공유하기

닫기
close

  1. home

53주년 문화의 날 맞아 '문화보국'을 실천한 <간송미술관>과 <간송옛집> 관람

미니마우스 2026-10-17 84 공유하기 10

10월 17일은 <문화의 날>, ‘문화가 있는 날’과 혼돈하지 마세요.

 오늘은 10월 17일 토요일입니다. 많은 토요일 중에서 오늘은 특별한 토요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이 바로 <문화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의 날’이라고 하면 ‘문화가 있는 날’로 오해하기 쉽지만 ‘문화의 날’은 1년에 한번이고, 더 오래되었습니다.

 

 문화의 날은 방송의 날, 잡지의 날, 영화의 날이 각각 따로 있었는데 1973년에 통합해서 문화의 날로 만들어졌습니다. 벌써 53주년이 된 법정기념일입니다. 처음 만들어질 때는 10월 20일이었는데, 날짜가 고정이 되니까, 요일이 계속 바뀌고 평일에는 문화를 즐기기 어려워서, 20년 전인 2006년부터 10월 셋째 주 토요일로 고정이 되어서, 올해 17일이자 세 번째 토요일인 오늘이 53주년 문화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문화의 날’에는 ‘무엇을 할까?’ 고민을 했었는데요. 문화를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분이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었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님은 우리의 문화와 문화유산이 사라지거나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을 막고, 훈민정음 해례본과 같이 중요한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신 분이고, 또 간송미술관을 만드신 분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문화의 날을 맞이해서 성북구에 있는 간송미술관과 도봉구에 있는 간송 옛집을 방문해서 간송 선생님이 지켜준 문화유산을 관람하고, 옛집에서 우리 문화유산을 지켜주신 것에 감사 인사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external_image

<간송미술관 가는 길입니다.>


external_image

<간송미술관 입구입니다.>


external_image

<간송미술관 정원에는 이렇게 문화유산이 지키고 있습니다.>


external_image

<삼층 석탑이 있습니다.>


external_image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동상도 있습니다.>


external_image

<불상도 있습니다.>


external_image

<뒤에 건물이 '보화각'이자 '간송미술관'입니다.>


external_image

<오늘의 주제인 '상서'입니다.>


<문화보국>을 실천한 <간송 전형필 선생님>과 최초 사립 미술관 <보화각>(현재 간송미술관)

 일제는 우리나라를 빼앗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없애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의열 활동으로, 또 어떤 분들은 신문으로, 어떤 분들은 우리나라 말과 글을 지키고 연구하는 등 많은 분들이 자기가 잘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를 되찾고 우리나라의 문화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 중에 ‘문화보국’이라는 신념으로 우리나라의 문화와 문화유산을 지켜주신 분이 계신데, 그 분이 바로 간송 전형필 선생님입니다.


external_image

<저희는 도록을 구매했는데요. 도록에 있는 전형필 선생님 사진과 일대기입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님은 1906년 지금의 종로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님은 “문화유산을 잃는 것은 곧 민족의 역사를 잃는 것”이라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문화를 지켜서 나라에 보답하고 애국을 한다.’라는 뜻의 <문화보국>을 실천하셨습니다. 일제는 우리나라 문화를 없애고, 많은 우리 문화유산을 가져가려고 했습니다. 이를 안타까워하신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우리 문화유산이 해외에 나가지 않도록 모으기 시작을 했고, 덕분에 많은 문화유산이 우리나라에 있게 되었고, 또 수집하신 것들 중에는 국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입니다.


external_image

<간송 선생님 돌잔치 사진입니다. 역시 도록에 있고, 뒤의 병풍을 잘 봐주세요.>


external_image

<도슨트를 하는 건물 1층에 있는 해례본입니다.>

 

 또 193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 사립 미술관인 ‘보화각’을 세우셨습니다. 이 보화각이 지금의 간송미술관입니다. 보화각이라는 이름의 뜻은 ‘빛나는 보배를 모아 두는 집’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보통 미술관은 설날과 같은 특정한 휴관일 빼고는  관람할 수 있는데, 간송미술관은 일반인들에게 1년에 2번정도 개관을 하기 때문에 저희가 언제든지 관람 할 수 있는 미술관이 아닙니다. 


external_image

<지금의 간송미술관인 '보화각'의 모습입니다.>


external_image

<원래 돌사자가 있었는데 중국에 돌려주고, 지금은 호랑이가 지키고 있습니다.>


external_image

<티켓은 1층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external_image

<1층 전시장 입구에 있는 '보화각' 글씨 입니다.>


external_image

<역시 1층에 있는 간송 전형필 선생님 얼굴입니다.>


상서: 컬렉션을 읽다 – 오동나무 상자 위에 새긴 기록

 마침 운이 좋게도 간송미술관에서는 간송 전형필 선생님 태어나신지 120주년을 맞아서 <상서箱書: 컬렉션을 읽다.>라는 전시가 2026년 10월 7일부터 12월 6일까지 진행되고 있어서 53주년을 맞은 문화의 날을 기념하기에 딱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성북구에 있는 간송미술관을 갔습니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가거나 현장에서 관람 티켓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관람은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에 8번 관람이 가능합니다. 관람할 때는 1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여기에 중요한 팁이 있는데요. 그냥 관람하는 것보다 도슨트가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도슨트는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두 번 있고 도슨트 시간은 30분 정도 진행합니다. 저희는 11시 도슨트를 선택했습니다. 알고 보면 더 잘 보이기 때문입니다.


external_image

<오늘의 도슨트 안내입니다.>


external_image

<이렇게 안내 책자도 책상에 있었습니다.>


external_image

<조금 일찍 가서 기다렸습니다.>

 

 11시부터 도슨트가 시작되었는데요, 도슨트는 옆에 새로 만든 건물에서 진행됩니다. 오늘 도슨트는 최소영선생님께서 해 주셨습니다. 이번 전시는 2024년부터 시작한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문화유산 컬렉션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전시라고 말씀해주셔서 더 큰 의미가 있는 전시였습니다.

 

external_image

<이번 전시는 컬렉션을 마무리하는 전시라고 하셨습니다.>


 전시 제목이 “상서”인데, 사실 상서가 무슨 뜻인지 궁금했습니다. 도슨트의 시작은 제가 궁금했던 상서의 뜻부터 말씀해 주셨습니다. "상서"란 상자에 기록한 글을 말한다고 하셨습니다. 상서에서 '상'은 '상자'를, '서'는 '글'을 의미합니다. 지금처럼 보존 기술이 뛰어나지 않았을 때는 문화유산 크기에 맞게 나무 상자를 제작해서 보관했다고 합니다. 이때 그냥 보관하지 않고 해당 문화유산에 대한 감정을 한 글을 남긴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하면 보증서같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전형필 선생님은 오동나무로 제작했다고 하는데 오동나무가 보존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external_image

 <'상서'의 뜻부터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전형필 선생님이 모은 문화유산이 컬렉션이 되는 과정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컬렉션은 입수를 하고 감식을 하는데 이때 '상서'를 하고, 보존할 때도 '상서'를 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모은다고 해서 모두 컬렉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명, 작가명, 그리고 어떻게 수집했는지 등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고, 그래서 '상서'를 읽어보면 작품을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external_image

<모은다고 컬렉션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또 간송 전형필 선생님과 위창 오세창 선생님의 인연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님께서 젊었을 때 오세창 선생님께서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말에 감명 받아서 시작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오세창 선생님께서 문화의 힘을 말씀하시면서, 문화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인연으로 간송미술관에는 오동나무 상자가 약 700개 있는데, 이 중에 '상서'로 확인된 작품은 258건이라고 합니다. 이 상서들 담당하신 분들은 모두 4분입니다. 오세창 선생님과 이도영 선생님, 이한복 선생님, 나가오 우잔 선생님으로 각자 잘 하는 분야를 담당해서 상서를 남기셨는데, 오세창 선생님 상서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external_image

<전형필 선생님과 오세창 선생님의 인연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external_image

<상서를 맡은 4분입니다.>

 

이름이 한번 바뀐 <선록완월도>

 가장 첫번째 도슨트 작품은 <선록완월도>에 대한 상서입니다. ‘김 양송당의 고사완월도 위창이 상자에 서명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 양송당은 김시라는 분으로, 당시에 ‘최립의 문장, 한석봉의 글씨, 김시의 그림’이라고 해서 ‘3절’로 불렸다고는 김시 님의 작품입니다. 그림의 이름 중에 ‘고사’라는 뜻은 신선이나 선비를 의미하고 '완월”' 달을 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보면 신선이 달을 보고 있는 그림입니다. 옷 주름 선은 큰 붓으로 힘차게 빠르게 지나갔고, 손 부분은 작은 붓으로 매우 섬세하게 그린 특징이 있는 작품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작품의 상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처음에 오세창 선생님은 제목을 ‘고사완월’라고 했는데, 지금의 작품명은 ‘선록완월’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에 이름을 신선이 달을 보고 있다고 해서 고사완월라고 했는데 나중에 사슴도 같이 보고 있어서 이름을 선록완월이라고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상서를 통해서 이름이 한번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아마 도슨트를 안 들었으면 몰랐을 것입니다.


external_image

<김시님의 설록완월도입니다.>


external_image

<선록완월의 상서인데, 이름이 한번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external_image

<실제 전시되고 있는 '실록완월도'와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굵은 붓은 옷주름을, 손을 얇은 붓으로 섬세하게 그렸습니다.>


금으로 만든 <고사한거도>

 이 작품은 이징이라는 분의 작품인데, 인조 임금님의 총애를 받던 화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싼 재료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 비싼 재료는 바로 금입니다. 이 그림은 금가루로 만들었습니다. 검은 비단에 금가루를 뿌려서 만든 산수화인데, 산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나머지는 안개나 강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런 구도는 그 당시 유행하던 방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그림에는 작가님의 도장 말고도 도장이 찍혀져 있는데, 이 그림을 소유했던 사람의 것입니다. 당시에는 소장한 사람의 도장도 찍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림은 그림을 기른 작가님도 알 수 있지만 누가 가지고 소유했는지도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ternal_image

<금가루로 만든 고사한거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external_image

<고사한거에 대한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당시에는 소유했던 사람의 인장을 찍기도 했습니다.>


external_image

<실제 전시되고 있는 고사한거와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확대해서 찍으면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이 보입니다.>


단원 김홍도 님의 <낭원투도>

 저도 아는 김홍도 님의 작품으로 이 작품에는 한 남자가 그려져 있는데, 한 남자가 복숭아를 들고 있습니다. 이 남자가 바로 동방삭이라는 분인데, 제목의 ‘낭원투도’의 의미가 복숭아를 훔치다는 것입니다. 동방삭은 먹으면 오래 산다는 서왕모의 복숭아를 3개를 훔쳐 먹었습니다. 그래서 장수의 상징으로 되어있습니다. 역시 오세창님이 상서를 남기셨는데요, “단원의 인물화 걸작으로, 근래 보기 드문 가품(아름다운 작품)이다.”라고 칭찬의 상서를 남겼습니다.


external_image

<김홍도 님의 낭원투도입니다.>


external_image

<낭원투도에 대한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복숭아를 훔쳐가는 동박삭입니다.>


external_image

<바람에 날리는 옷을 보면 뒷걸음으로 간다는 것을 압니다.>

 

임희지 님의 <풍죽>과 <신죽>은 쌍폭

 이 작품에는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보통은 상서에 한 사람만 기록하는데, 이 작품에는 임희지 님의 문인 친구들이 1줄 후기와 같은 감상을 적은 글이 있는 것이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상서에서 이 작품들은 “쌍폭”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풍죽과 신죽은 두 개가 같은 대나무를 그린 그림입니다. 만약 따로 발견되거나 상서가 없었으면 이 작품이 같이 그려진 것인지 알 수 없었을 것 입니다.


external_image

<'쌍폭'으로 2개가 1세트인 작품입니다.>


external_image

<상서에서 '쌍폭'의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external_image

<전시되고 있는 풍죽입니다.>

 

글씨의 대가 추사 김정희님의 <직성수구>와 <차호호공>

 이 직성수구는 두 개 글이 같이 있는데, 이것을 ‘대련’이라고 합니다.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읽게 되는데요. 30대에 쓴 글씨로, 청나라의 고순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황제에게 직언을 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강직함이 동쪽에 있는 조선 하늘까지 도달해 있다는 의미로 고순님에게 전달했는데, 이 작품이 중국의 연경시장에 나왔고, 박석윤이라는 분이 구매했고 이후 간송미술관으로 오게 되었는데, 오세창님은 조선에서 만든 작품이 청나라로 갔다가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것이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다.”라고 상서에 남기셨습니다.


external_image

<직성수구는 청나라에 갔다가 다시 우리나라로 왔습니다.>


external_image

<직성수구의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실제 전시되어 있는 직성수구입니다.>


 차호호공은 말년에 쓰신 글입니다. 그래서 직성수구와 함께 글씨체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고, 예서체로 되어 있는데 중간의 '꽃 화'가 마치 꽃이 피거나 웃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세창님은 “추사 작품 중에 우월을 가린다면 당연 첫번째 손가락이다.”라는 평가를 남기실 정도로 완성된 글씨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ternal_image

<차호호공에 대한 설명도 들었습니다.>


external_image

<차호호공의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추사 김정희님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이라는 차호호공입니다.>


장승업 님의 <송하녹선>과 <추정귀선>

 장승업 님은 천재화가라고 부르는데, 신분이 높지 않고 미술을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지만 한번 보고 따라 그릴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경복궁 재건에도 단청을 그렸다고 했습니다. 이 두 그림도 쌍폭으로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와 거북이 등이 나옵니다. 특히 거북이를 깔고 앉은 노인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거북이가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노인이 거북이는 3천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미는데, 본인은 5번봤다는 허풍을 했다고 합니다.


external_image

<송하녹선과 추정귀선입니다.>


external_image

<상서를 설명해주셨습니다.>


external_image

<실제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external_image

<거북이 머리 찾으셨나요? 3천년마다 고개를 내민다는데, 할아버지가 5번을 보셨다고 합니다.>

 

장승업 님의 <풍진삼협>과 그의 제자 안중식 님의 <한산충무>

 이 풍진삼협은 어지러운 세상을 지키는 3명의 삼협을 그렸는데, 보면 2명만 있습니다. 두 명은 이정과 홍불녀로 부부만 그려져 있습니다. 보통 다른 작가분들은 삼협이니까 당연히 3명을 그리지만 장승업 님은 2명을 드리고 풍진삼협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2명인가?’에는 그림 안에 힌트가 있습니다. 장승업님이 이 그림 그릴 때, 제자이신 안중식 님이 옆에 있다가 “3명인데 왜 2명만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았고, “지금 오고 있다.”라는 재치 있는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안중식 님이 옆에 글로 적어 놔서 알 수 있습니다.

 

external_image

<천재화가 장승업 님의 풍진삽협인데 2명만 있습니다.>


external_image

<풍진삼협의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전시되어 있는 풍진삼협입니다. 나머지 한 분도 빨리 와서 그림에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ternal_image

<왜 2명인지 제자 분이 나중에 적어 놓으셨습니다.>


 장승업님의 제자인 안중식님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을 그린 작품입니다. 장군님이 칼을 들고 있는 작품인데, 오세창 님이 그림 위에 글을 적었고, 지금까지 도슨트에서 본 상서는 오세창님의 상서였지만 이 작품의 상서는 이한복님이 하셨습니다. 이한복님은 안중식님의 제자이기도 해서 제자가 스승님 작품에 상서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external_image

<장승업 님의 제자 안중식님의 한산충무입니다.>


external_image

<한산충무의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실제 전시되고 있는 한산충무 작품입니다.>


조소림님의 <인물고실지도>

 이 작품은 원래 병풍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총 12개 작품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국 고사를 그림으로 되었다고 하는데, 앞에서 도록에 있는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사진을 기억하시나요? 이 작품을 설명하실 때,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1살 돌 잔치 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진에 보면 이 그림이 뒤에 병풍으로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이즈가 큰 것처럼 오동나무 상자 또한 일반적인 사이즈가 아니라 큰 상자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external_image

<12개의 병풍으로 만들어진 인물고실지도입니다.>


external_image

<한 살 돌잔치 때 병풍으로 있습니다.>


external_image

<실제 전시된 작품입니다.>


external_image

<일반 상서보다 크기가 더 큰 상서입니다.>

 

도슨트의 마지막 오세창 님의 <여두실우사창>

 오늘 도슨트의 마지막 작품은 오세창 님의 여두실우사창입니다. 이 작품 뜻은 ‘작은 방에 비가 창문을 두드린다.’라고 합니다. 중국의 갑골문자로 상형문자 형태로 만든 작품입니다. ‘쏠 사’자를 화살모양으로 그린 것처럼 글자지만 그림을 넣어서 재미있게 보이기도 합니다. 상서는 본인 작품에 본인 스스로 상서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도슨트가 끝나고 이제 작품을 즐기러 가면 됩니다. 


external_image

<상서를 기록한 오세창님의 작품입니다.>


external_image

<갑골문자를 이용해서 상형문자로 작품을 만드셨습니다.>


external_image

<상서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external_image

<실제 전시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external_image

<'쏠 사'에 화살이 있습니다.>


더 많은 작품이 있어요.

 만약 도슨트가 없이 봤다면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었는데, 도슨트를 듣고 보니까, 많은 부분이 이해되었고 더 잘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실제 전시는 도슨트 외에 더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ternal_image

<안중식 님의 작품과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명나라 초기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주용님의 작품과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조선 후기 이의양님의 작품과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역시 안중식 님의 작품과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허목님의 작품과 상서입니다.>


external_image

<상서 만드는 과정도 알 수 있습니다.>


간송 선생님의 자취가 남아 있는 간송 옛집

 간송 선생님의 옛집인 ‘간송 옛집’은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있고, 2012년 국가등록문화제가 되었습니다. 원래 집은 종로구에 있었고, 이곳은 제사 때나 근처에 농장을 방문할 때 자주 오시던 곳이라고 합니다. 입구에는 보화각에서는 간송 선생님의 사진을 볼 수 없는데, 이곳에서는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대문을 통해서 들어가면 한옥이 한 채 나오고 한옥 안에는 들어가 볼 수는 없습니다. 또 서재인 ‘옥정연재’가 있습니다. 그 뜻은 ‘우물에서 퍼 올린 구슬 같은 맑은 물로 먹을 갈아서 글씨를 쓰는 방’이라는 뜻 입니다. 마당이 있고 아궁이와 굴뚝이 옆과 뒤에 있습니다. 그리고 집 옆에는 예전에 사용하던 우물인 ‘옥정’과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수집하였던 주요 문화재 사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잠들어 계신데, 일반 관람객은 묘소로 올라가면 안 됩니다. 멀리에서 보면 묘소가 조금 보입니다. 멀리서지만 감사의 인사도 드렸습니다.


external_image

<문화보국을 실천한 간송 전형필 선생님 옛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external_image

<드디어 옛집 입구입니다.>


external_image

<입구에는 전형필 선생님의 사진과 해례본 등이 있습니다.>


external_image

<대문 앞입니다.>


external_image

<'ㄱ'자 형태의 기와 집입니다.>


external_image

<서재인 옥정연재입니다.>


external_image

<아궁이가 있는 곳입니다.>


external_image

<커다란 소나무와 잘 어울리는 굴뚝입니다.>


external_image

<컬렉션에 있는 문화재사진도 있습니다.>


external_image

<옥정연재의 옥정이라는 우물입니다.>


external_image

<제 뒤 쪽에 간송 전형필 선생님께서 잠들어계십니다. 왼쪽에 조금 보입니다.>


문화재는 살 수 있어도 그 안에 있는 우리 역사와 정신은 살 수 없어요,

 ‘문화는 무엇일까?’하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일제는 우리 문화를 없애려고 했고, 왜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우리 문화와 문화유산을 지키려고 노력했을까요? 제 생각은 문화는 우리나라와 우리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문화유산에는 우리 조상님들의 정신이 그대로 남아서 숨을 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문화와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야 합니다. 문화재는 살 수 있지만 그 안에 숨 쉬고 있는, 조상님들로부터 내려온 시간과 정신은 절대 살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와 문화유산을 더 사랑하고 더 아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53주년 문화의 날입니다. 문화의 날이 있을 정도로 문화는 중요합니다. 백범 김구선생님은 아름답고 높은 문화를 가진 나라가 소원이었고, 아름답고 높은 문화는 우리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문화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사람들만 잘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옛날부터 전해내려 오는 우리 문화의 힘이 있어서 지금 더욱 빛이 나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이 문화의 날이라서 우리나라 문화를 지켜주신 분들과 간송 전형필 선생님이 더 고마워지는 날입니다. 이제 저희가 커서 더 반짝이는 우리 문화를 더 아름답고, 더 높은 문화로 만들고 세계에 더 알려보겠습니다. 53주년 문화의 날을 맞이해서 문화보국으로 우리 문화와 문화유산을 지켜 주신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간송미술관과 간송 옛집을 취재한 미니마우스기자입니다.


해치 즐겨


*모든 사진은 직접 찍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