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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레아 우라! 117년 전 외침을 찾아간 <안중근의사기념관>

미니마우스 2026-10-03 128 공유하기 11

개천절에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찾아간 이유는?

 오늘은 10월 3일 개천절입니다. 개천절은 ‘하늘이 열렸다.’는 말인데 단군 할아버지께서 우리나라를 만든 날입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의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높은 문화를 가진 반짝 반짝 빛나는 대한민국입니다. 5천년의 역사 속에서 나라 이름이 바뀌기는 했지만 모두 우리나라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오랜 역사 속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공격이 있었고, 한때는 나라를 잃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으로 다시 태어났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이제는 세계 속에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 되었고,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단군 할아버지가 우리나라를 만드신 후에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많은 분들이 있지만, 이제 곧 10월 26일이 되는데요. 저는 117년 전 10월 26일에 하얼빈역에서 아무도 하지 못 했던 의거를 성공하고, ‘꼬레아 우라’를 당당하게 외친 안중근의사님을 만나기 위해 아빠와 함께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찾아갔습니다. 여기서 꿀팁이 있는데요. 저희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갈 때면 항상 해치 버스를 탑니다. 탄소중립도 되고, 귀엽고 예쁜 해치 버스를 타면 남산의 경치도 보고 더 즐겁게 남산에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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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귀엽고 예쁜 해치 버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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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갈 때 타고 가면 더 즐겁습니다.>


조선 신궁이 있던 남산을 지키고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의사기념관은 우리 서울시의 남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남산에 있는 것은 그 자리가 일제가 만들어 놓은 조선신궁이 있었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조선 신궁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사람을 일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만든 일본 신사인데, 우리나라 사람을 강제로 참배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있는 것 자체가 뜻이 깊습니다.


 최초 안중근의사기념관은 1970년에 10월 26일에 개관하였고, 당시에는 1층짜리 기와집 형태로 만들어졌고 일부는 시민들의 기부를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지금의 기념관은 새로 만들었고 2010년 3월 1일에 개관하였고, 깊은 뜻을 가지기 위해 일부는 역시 시민들의 기부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건물은 1층에서부터 3층까지 되어 있고, 영상같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건물 모습이 다른 건물하고 조금 다른데, 이것은 안중근 의사님하면 생각나는 단지동맹과 관련 있습니다. 단지동맹은 12인이었고, 이 단지 동맹을 기념하는 탑이 해외에 있는데, 돌이 12개가 있는 모습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따라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실 어린이기자가 되어서는 처음 왔지만, 그 전에는 1년에 몇 번씩 왔었습니다. 그것은 아빠께서 존경하시는 분 중 한분이 안중근 의사님이고, 저도 독립운동가분들 중에 안중근 의사님을 가장 좋아해서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도슨트나 다른 프로그램이 있으면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제 얼굴을 모르시지만 안중근의사기념관 홈페이지를 보면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저를 볼 수 있습니다.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가면 가장 먼저 안중근의사님의 동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동상은 1909년 10월 26일 의거 후 태극기를 들고 ‘꼬레아 우라’를 외치는 당당한 안중근 의사님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옆에는 ‘민족정기의 전당’이라는 표지석도 있습니다. 또 그 앞에는 안중근의사님의 유묵을 돌에 새기거나 마지막 유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기념관 입구까지 안중근의사님의 유묵이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유묵은 순국 직전 마지막 유묵입니다. 우리가 의사님이라고 부르지만 안중근의사님을 대한 의군 참모 중장으로도 부르는데요, 이 마지막 유묵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우리나라 군인으로 나라를 위해서 의거를 했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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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거 후 꼬레아 우라!를 외치시는 안중근 의사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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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일제가 만든 조선신궁이 있던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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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동맹을 기억하기 위한 건물 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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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묵으로 새겨 만든 표지석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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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도 유묵의 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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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국헌신 군인본분'이 가장 마지막 남기신 유묵입니다.>


안응칠에서 안중근이 되기까지를 기록한 1전시관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것은 안중근의사님과 안중근의사님이 피로 작성하였다는 '대한독립 태극기'입니다. 이 좌상은 안중근의사님의 모습은 마지막 순국 전에 어머님께서 주신 수의를 입은 모습입니다. 3층에는 순국 직전 사진도 있습니다. 이 좌상의 옆으로 가면 1전시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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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를 입고 계신 의사님과 대한독립 태극기입니다.>


 1전시실은 안중근의사님의 생애와 안중근의사님이 독립운동에 참가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단지한 손과 유언을 볼 수 있고, 안중근의사님의 연대기도 있고, 그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도 있습니다. 안중근의사님은 1879년에 태어났는데 가슴과 배에 7개의 점이 있어서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났다고 해서 이름이 ‘안응칠’이었습니다. 또 안중근의사님 집안은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어머니인 조마리아님과 두 동생분들 모두 훈장을 받았을 정도였고, 이전의 도슨트에서는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가문이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예전에 백범기념관에서 김구선생님께서 동학운동할 때 위기가 있었는데 이때 안중근의사님의 아버지신 안태훈님께서 보살펴 주신 인연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 이 두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가문은 더 특별해지는 것이 있는데, 안중근의사님 동생인 안정근님의 딸인 안미생님은 김구선생님의 비서이자 첫째 아들인 김인님과 결혼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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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된 손과 유언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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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리는 을사늑약 체결 등 바람 앞에 등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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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님의 일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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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님 가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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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도슨트 때 32개 훈장으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가문이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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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동생분들도 독립을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교육, 국채보상운동 그리고 독립운동까지 나라를 위해 노력한 안중근의사님을 기록한 2관

 2관은 2층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2층에는 안중근 의사님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안중근의사님하면 독립운동만 하신 것으로 알고 계시지만 계몽운동을 위하여 삼흥학교, 돈의학교를 만드시거나 인수해서 교육에도 힘을 쓰셨습니다. 그리고 국채보상운동에 감명받아서 관서지부를 만들어서 국채보상 운동을 했고 이때 어머니이신 조마리아님께서도 많은 돈을 냈습니다. 이후에 안중근의사님은 동의회라는 의병으로 군대를 만들어서 국내에 진입을 위한 ‘국내진공작전’을 했는데, 이때 포로 잡은 일본군을 다른 분들은 죽여야한다고 했는데, 만국공법에 따라 풀어줬습니다. 그러면 풀려난 포로는 비밀을 지켜야하는데 비밀을 말해서 일본에게 위치가 알려져서 공격당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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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노골적으로 우리나라를 가질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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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혈활동만 아니라 교육에도 힘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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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채 보상 운동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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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위한 의병을 조직하는 동의회도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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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진입을 위한 작전도 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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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공법에 따라 포로를 풀어줬습니다.>


<평화를 사랑하신 의사님입니다.>


 이후 침체된 항일 운동을 만회하기 위해 동의단지회를 만들어서 단지를 하고 그 피로 대한독립이라는 말이 들어간 태극기를 만들게 됩니다. 아쉽지만 이 태극기는 전해지지 않고, 안중근 의사님의 동생분들이 이 태극기로 만든 엽서에만 남아 있습니다. 어디인가 존재해서 안중근의사님과 함께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동의단지회에서는 우리나라를 침범하는데 앞장선 이토 히로부미를 없애고, 매국노를 없애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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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항일 운동으로 동의단지회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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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12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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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있는 기념비인데, 이 기념비 모습으로 기념관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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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만든 대한독립 태극기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꼬레아 우라!" "꼬레아 우라!" "꼬레아 우라!" <10월 26일의 의거와 순국>을 기록한 3관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빈에 왔습니다. 하얼빈에 온 것은 우리나라를 일제가 가지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이고, 이때 채가구에 올 수 있어서 일부는 채가구로 가고 안중근의사님은 하얼빈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토 히로부미가 왔을 때, 안중근의사님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을 쏘고 의거를 성공하셨습니다. 그리고 대한 만세인 “꼬레아 우라”를 세번 외치시고, 당시 러시아 땅이라서 러시아 경찰에 잡혔습니다. 이 의거는 재연된 영상으로 볼 수 있고 실제 의사님의 모습도 볼 수 있는 영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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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인식시키면 영상이 나옵니다.>


<117년 전 "꼬레아 우라!"가 들리시나요>


<실제 의사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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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현장이고, 하얼빈역에는 장소가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데 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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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거에 사용하신 총입니다.>


 당시 러시아 땅에서 일어났으니까 러시아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지만 불법으로 일본인에게 재판을 받도록 보내졌습니다. 이 재판에서도 당당하게 안중근의사님은 일본인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15가지의 이토 히로부미의 죄를 말하였고, 5회 공판 후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을 받았습니다. 일본에게 사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려고 안중근의사님은 항소를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또 안중근의사님의 어머님 역시 국가를 위한 일이었다며 항소하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아들을 죽음 앞에 속으로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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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세서 재판을 받아야 하지만 불법으로 일본에 인도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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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재판을 받으시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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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에게 15죄를 물어서 의거를 하셨습니다.>


<15가지 죄를 말씀하시는 안중근의사님의 재연입니다.>


 이후에 안중근의사님은 많은 유묵도 남기지만 본인의 자서전인 ‘안응칠의 역사’를 쓰시게 됩니다. 그리고 "동양평화론"을 쓰게 됩니다. 나중에 사형집행일이 정해졌을 때 동양평화론 마무리하기 위해 교도소장에게 연기 요청을 했었고, 처음에는 연장해주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연기가 안 된다고 해서 이 동양평화론은 마무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얼빈을 중립지역으로 두고, 삼국이 같은 화폐를 쓰고, 삼국의 청년이 서로의 말을 배우는 등 지금의 유럽연합같은 것인데 그 당시 생각하신 것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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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자서전인 '안응칠의 역사'를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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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대한, 평화에 대한 생각이 깊으신 의사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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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평화론을 쓰시다가 순국하셨습니다.>


대한독립이 되면 천국에서 춤을 추신다는 의사님

 순국 전에 신부님과 동생분들이 면회를 합니다. 그런데 이때 편지로 유언을 남겼고 또 돌아가시면 뼈를 하얼빈 공원 근처에 묻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에 반장을 해 달라고 하셨고,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고,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을 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영상으로 보는데 눈물이 조금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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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을 남기는 의사님이십니다.>


<대한독립되면 천국에서도 춤을 추시겠다는 의사님 유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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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로 유언을 남기시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는 1층에서 본 안중근의사님 모습은 사진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수의를 입고 당당하게 계신 안중근의사님 모습인데, 이 수의는 안중근의사님의 어머님이신 조마리아님이 직접 만든 수의입니다. 이 수의를 만들면서 순국해야 하는 아들이 입는 수의를 만드신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결국 안중근의사님은 순국하셨고, 일제는 돌아가신 안중근의사님을 가족에게 주지 않고 어디인지도 모르게 묻었습니다. 그래서 안중근의사님께서는 독립된 우리나라에 돌아오지 못 하고 계십니다. 꼭 우리나라에 모셔와서 자랑스러운 우리나라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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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만드신 수의를 입으신 의사님...너무 슬퍼요.>


체험으로 만나는 안중근의사님

 3 전시관을 지나면 예전에는 유묵들이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체험전시실로 되어 있습니다. 우표나 훈장도 있고, 안중근의사님께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고, 백범기념관처럼 안중근의사님과 대화도 할 수 있습니다. 유묵을 스템프처럼 찍을 수도 있고, 안중근의사님과 함께 사진을 찍어서 엽서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중근의사님에 대한 문제를 풀어서 삼흥학교를 졸업하는 것도 재미있게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영상관에서 영상을 보고 안중근기념관 취재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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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에 대한 큰 기대를 쓴 유묵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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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 알 수 있는 유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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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직전 유묵으로 교도소장 따님이 가지고 계시다가 기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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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와 같이 기념품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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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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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묵을 스템프로 찍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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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님과 엽서와 우표를 만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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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문제를 대부분 맞춰서 삼흥학교를 졸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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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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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기념관처럼 안중근의사님과도 대화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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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영상관에서 영상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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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님과 엽서 만들기는 이렇게 진짜 안중근의사님께서 엽서를 보내주시는 것처럼 메일로 보내주십니다.> 


빨리 우리곁으로 돌아오세요!

 이제 곧 안중근의사님 의거 117주년이 됩니다. 그런데 아직 안중근의사님은 우리 곁에 돌아오지 못 하고 계십니다. 빨리 모셔 오셔서 발전된 우리나라에 편히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셨을 때 천국에서 춤을 추셨을 안중근의사님! 돌아오시면 많은 사람들이 춤을 추면서 맞이할 겁니다.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빨리 우리 곁으로 돌아오세요.


 어느 나라도 남의 나라를 뺏을 권리가 없습니다. 힘이 세다고 해서 약한 나라를 괴롭히면 안 됩니다. 이건 저희같은 초등학생들도 다 알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았을려고 하지 않았고, 단지 우리 나라를 지킬려고 했었습니다. 오늘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안중근의사님을 만나보니, 117년의 홀로 절실하게 외치셨던 "꼬레아 우라"가 귀에 들리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독립뿐만 아니라 동양의 평화를 위해 노력하시다 순국하신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사님을 기억하는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미니마우스기자였습니다. 

백호주작 사랑해

*모든 사진은 직접 찍었습니다.


  • 이화파랑새
    ㅎㅎ 어린이 기자에날 모자가 너무 잘 어울리시네요!
    2026-10-06
    18:44:46
  • 미니마우스
    ㅎㅎㅎ감사해요!
    2026-10-09
    19:09:51
  • sunny0621
    해치 버스 정말 귀엽네요!
    저는 개천절에 놀기만했다는,,,큼큼;;
    개천절에 놀지않고 이렇게 안중근의사에 대해 보시다니, 대단하셔요!!
    2026-10-11
    10:10:39
  • 미니마우스
    해치 버스를 타고 남산을 도는 것도 재미있고, 월드컵 공원에 맹꽁이 기차도 재미있어요. 26일이 의거일인데, 이제 꼭 찾아서 모시고 오면 좋겠어요!
    2026-10-13
    21: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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