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아티스트플로라 기자입니다.
여러분은 서울 종로의 땅 아래에 조선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저는 9월 12일 서울역사박물관 분관인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 진행하는 ‘600년 타임슬립, 한양 흔적 찾기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교육 운영 내용>
○ 교육 기간 : 2026. 9. 5.(토) ~ 11. 7.(토) (*총 8회)
○ 교육 시간 : 오후 2시 ~ 오후 3시 40분
○ 모집대상 : 초등학생 자녀를 동반한 가족 (회당 7가족)
○ 교육장소 :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전시실 및 공평동 일대 유적

전시실에 들어서자 넓게 펼쳐진 유적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박물관에 가면 유리 너머로 옛 물건을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곳 전시관에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았던 집터가 발아래에 펼쳐져 있어 새삼 놀라웠습니다. 높은 건물이 가득한 종로의 지하에 이런 모습이 숨어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땅속에서 다시 나타난 옛 서울
조선시대 한양의 모습을 담은 ‘수선전도’ 목판 모형을 살펴보며 한양을 둘러싼 4대 산과 4대문을 이야기해 보고, 지금의 공평동이 어디쯤에 있었는지도 확인했습니다. 공평동은 조선시대 한양의 중심부에 있었고, 관청이 모여 있던 육조거리와 큰 시장이 있던 종로에서도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공평동 일대는 지금 높은 빌딩들이 가득한 서울의 중심지입니다. 하지만 이곳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땅속에 남아 있던 옛 건물터와 골목길, 여러 유물이 발견되었습니다. 엄마는 대학생 때만 해도 이곳은 피맛골로 유명했던 곳이라며, 그 아래에 이런 유적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발굴된 유적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발견된 바로 그 자리에 보존해 전시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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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람들의 흔적 찾아보기
선생님의 설명을 따라 유적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지금은 건물의 벽과 지붕이 사라져 푯말이 있어도 처음에는 어디가 집이고 어디가 길인지 쉽게 알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살펴보니 사람들이 다니던 골목과 집이 있던 자리, 온돌방과 작은 집, 가게가 있었던 흔적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공평동에서는 땅속에 여러 시대의 흔적이 겹겹이 쌓인 채 발견되었습니다. 흙의 층과 그 안에서 나온 유적과 유물을 살펴보면 어느 시대의 흔적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1세기(100년)에 약 1미터씩 흙이 쌓인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전시관에서는 그중 16~17세기의 건물터와 골목 등 실제 발굴된 유적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유적 주변에서는 공평동에서 발견된 여러 유물도 살펴보았습니다. 외국의 화폐도 발견되었는데, 베트남과 일본의 돈이 있어 당시에도 다른 나라와 교류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푸른 용이 그려진 중국산 청화백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청화백자는 값비싼 안료를 사용한 귀한 사치품으로, 수입이 금지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귀한 청화백자가 공평동에서 발견된 것을 통해 당시 공평동이 부유한 지역이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그릇도 귀했기 때문에 관청에서 사용하던 그릇에는 ‘하늘 천(天), 땅 지(地)’와 같은 천자문의 글자를 적어 관리하고, 자신의 이름을 적어 두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사를 지내거나 손님을 맞을 때 많은 그릇이 필요하면 빌려 사용하기도 했는데, ‘세기전’이라는 그릇을 빌려주는 가게도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대여점 같은 가게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문안길의 작은 집’도 살펴보았습니다. 앞에서 본 큰 집들과 달리 규모가 작은 집으로, 대청마루와 온돌방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배수시설이 잘 남아 있어 조선시대 사람들이 집에서 물을 어떻게 빼냈는지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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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밖으로 나가 600년 전 서울을 찾아라!
가장 먼저 찾아본 곳은 의금부 터였습니다. 선생님께서 지금의 스탠다드차타드은행 건물이 있는 자리가 조선시대 의금부가 있던 곳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지금은 높은 건물이 들어서 있어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종로 쪽으로 나오니 길가에서 ‘의금부 터’ 안내판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안내문을 읽으며 이곳에 죄인을 조사하고 다스리던 의금부가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높은 건물 아래가 조선시대의 중요한 관청이 있던 자리였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의금부 뒤쪽에는 ‘금부후동’, 말 그대로 의금부 뒤편의 동네가 있었습니다. 16세기 모습을 복원한 모형을 보니 큰 한옥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ㅁ자와 ㄴ자 모양으로 지어진 집들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일대가 한양에서도 땅값이 비싼 곳으로, 여러 신분의 사람들이 섞여 살았지만 부와 명성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살았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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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것은 당시 사람들이 걸었던 길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찾아가 보니 흙길이 아니라 크고 넓적한 돌인 박석이 깔려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 길이 가마꾼이 가마를 메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이며, 돌을 깐 길이라는 점으로 보아 관직을 가진 사람이 다니던 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또한 길이 향하는 방향을 살펴보면 의금부로 이어지는 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냥 울퉁불퉁한 돌길처럼 보였는데, 길의 폭과 바닥에 깔린 돌을 통해 누가 이 길을 다녔고 어디로 향했는지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금부후동을 지나 종로 큰길로 나오자 이번에는 조선시대 한양의 중심 거리 ‘운종가’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종로는 조선시대에도 비싼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핫플레이스’였다고 합니다.
운종가에는 종로 큰길을 따라 시전행랑이라는 상점 건물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습니다. 특히 지금의 종로타워 근처에는 값비싼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있었고, 생선을 파는 어물전과 비단을 파는 선전 등 여러 종류의 가게가 있었다고 합니다.

가게들이 모여 있던 이곳에서는 우물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수도가 없었기 때문에 우물은 생활에 꼭 필요했습니다. 특히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시전행랑에서는 불이 나면 큰불로 번질 위험이 있어, 우물의 물은 생활용수뿐 아니라 불을 끄는 데에도 사용했다고 합니다. 전염병이나 불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섯 가구가 하나의 우물을 함께 사용하며 관리하기도 해서 선조들의 지혜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물은 원래 자리에서 옮겨 복원된 것이라고 합니다.

시전행랑 뒤쪽에는 큰길과는 다른 좁은 골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피맛골입니다. 그 안에 복원된 우물의 원래 위치가 바닥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큰길에서 말을 탄 높은 신분의 사람을 만나면 길을 비켜 예를 갖춰야 했습니다. 바쁘게 물건을 나르던 상인이나 백성들은 이를 피해 뒷골목으로 다녔고, 그래서 ‘말을 피하는 골목’이라는 뜻의 피맛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엄마와 다시 전시관 한 바퀴!
교육이 끝난 뒤 엄마와 다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으로 돌아갔습니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유적을 살펴보느라 지나쳤던 체험 전시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시간에 쫓기지 않고 사람들 없을 때 사진도 찍으며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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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조선시대 사람들이 입었던 옷을 입어보았습니다. 옷을 갖춰 입고 전시관에 서 있으니 조금 전까지 배웠던 조선시대 한양으로 정말 시간여행을 온 것 같아 신나게 춤도 춰보았습니다.


또 기와집을 만들어 보고 벽돌을 직접 쌓아보는 체험도 해보았습니다.
수업 때는 유적을 보며 옛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을지 상상했다면, 이번에는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하면서 옛사람들의 생활과 건축을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체험을 마친 뒤에는 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태화관, 시간을 잇는 공간」도 둘러보았습니다. 인사동 194번지 한 장소에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여러 시대의 흔적이 이어져 있다는 내용의 전시였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능성 구씨 가문의 집터와 태화정이 있었고, 이후 순화궁과 태화관을 거쳐 1919년 3·1운동의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습니다. 한 장소가 시대에 따라 집과 왕실 공간, 역사의 현장으로 계속 달라졌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익숙한 종로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번 수업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서울의 과거와 현재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시관에서 먼저 공평동의 역사를 배우고 실제 장소로 나와 확인하니 설명만 들었을 때보다 훨씬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평소 같으면 높은 건물이나 가게만 보고 지나갔을 종로에서 옛 도시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것이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도 종로를 걷게 된다면 잠시 발밑을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600년 전 한양의 누군가도 걸었을지 모르니까요.
이상 600년 전 한양의 흔적을 찾아 시간여행을 다녀온 아티스트플로라 기자였습니다.

사진: 아티스트플로라 보호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