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 순국하신 유관순 열사님을 기억하는 방법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 비장함이 묻어 나오는 말씀을 한 주인공이 누군지 아시나요? 바로 유관순 열사님께서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계실 때 남기신 옥중 유언의 일부입니다. 유관순 열사님은 우리가 3.1만세 독립 운동을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분입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3.1만세 독립 운동을 위해 노력하였고 소중한 목숨을 희생하신 분들이 많지만, 특히 9월에는 유관순 열사님이 생각나게 합니다. 그것은 1920년 9월 28일에 겨우 16살의 나이로 순국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9월의 두 번째 토요일인 12일에 아빠와 함께 9월에 순국하신 유관순 열사님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하여, 유관순 열사님께서 다니셨던 이화학당 자리에 있는 이화박물관에서 탐방 프로그램인 <유관순의 길을 걷다.>에 참여하였습니다.
이화박물관의 <유관순의 길을 걷다.> 탐방 프로그램
유관순 열사님께서 다니셨던 이화학당은 이제 이화여자고등학교가 되었고, 이 학교에는<유관순 기념관>이 있습니다. 사실 유관순 기념관이 있다고 해서 이곳에 찾아오고 싶었고, 학교 안에 있다고 해서 학교에 문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체육관이라고 일반인이 들어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있었는데요. 바로 유관순 기념관이 현충시설이 된 것입니다. 유관순 기념관이 현충시설이 되면서 이 학교에 있는 이화박물관에서 유관순 기념관과 연계하여 탐방 프로그램을 올해 7월 2째주부터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일반인들도 유관순 열사님의 삶과 업적을 보고 유관순 열사님을 기억하고 기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화박물관은 우리 서울 시청에서 멀지 않은 정동에 있습니다.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이 건물을 보면 딜쿠샤나 손기정기념관, 윤동주기념관이 생각날 정도로 비슷하게 빨간 벽돌로 지어진 예쁜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미국인 심슨이라는 분이 기부한 기금으로 1915년 건립되어 심슨 기념관이라고도 합니다.

<이화학당 정문이었던 사주문입니다.>

<하마비도 있는 것은 최초 여성 교육 기관을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빨간 벽돌 건물이 1915년 만들어진 심슨기념관이자 이화박물관입니다.>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되어 있고, 2002년에는 등록문화재가 되었습니다. 저희가 신청한 “유관순 기념관 탐방 프로그램” <유관순의 길을 걷다.>는 이화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습니다. 1주일에 수요일과 토요일 2회 운영되고 오전 10시와 오후 2시 각각 두번씩 운영됩니다. 저희는 9월 12일 토요일 10시에 예약을 하고 찾아 갔습니다. 현장에서 선생님께 여쭤보니까, 별도 탐방 프로그램없이 이화 박물관만은 자율 관람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좀 더 유관순 열사님을 알고 기리고 기억하려면 탐방 프로그램을 추천합니다.

<이렇게 예쁘고 멋진 건물로 이화여고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등록 문화제입니다.>

<이 탐방 프로그램은 이화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신청합니다. (출처 : 이화박물관 홈페이지)>

<박물관 내 입구에 안내문도 있습니다.>
최초 여성을 위한 교육기관의 탄생.
선생님께서 오늘 탐방 프로그램 참여자라는 목걸이를 주시고, 또 운이 좋게도 오늘 프로그램부터 기념품이 있었습니다. 박물관의 모습과 동상 등 아주 예쁜 엽서를 봉투에 담아서 주시는데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습니다.

<유관순의 교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재현되어 있는 교실과 지금과 다른 옛날 태극기도 있습니다.>

<교실 뒤에는 유관순 열사님의 사진이 뒤에 있습니다.>

<이번부터 기념품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방문증을 주십니다.>
시작은 이화학당부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이화학당은 1886년에 세워진 학교로 올해 140년을 맞이했습니다. 첫번째 교장선생님이셨던 메리 스크랜턴 님이 이곳에 초가집 19채, 기와집 1채를 구매해서 이화학당을 세우셨는데, 처음에는 기와집으로 학교를 만들었습니다. 학교를 만들었지만 입학생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외국인이라는 거부감도 있고, 요즘은 믿을 수가 없지만 당시에는 여성이 교육을 받지 못 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한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고종황제께서 하사한 이름, <이화학당>
메리 스크랜턴님은 이런 환경 속에서 여성을 교육시켜서 태어나는 자녀도 교육 시키고,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했고, 1887년에 고종황제께서 여성 교육이 발전하라는 뜻에서 “이화”이라는 학교 이름과 “이화학당”이라는 현판을 직접 하사한 후에 황제가 하사했으니 믿을 수 있는 학교라고 해서 학생들이 몰리게 되고, 학생이 너무 많이 늘어나서 1900년에는 학교를 새로 만들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기숙사도 있고, 실험실이나 가사실도 있을 정도로 당시에는 최신식의 건물이었습니다. 또 공부도 영어로 했는데 칠판에 한글, 영어, 중국어, 일본어 4개의 글로 배웠다고 하고, 사진에 보면 학생들의 세례명과 넘버를 기록해서 외국인 선생님분들이 학생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새로 지은 학교는 기숙사, 가사실 등 그 당시 최고 기능이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이화학당과 유관순 열사님의 만남
유관순 열사님의 고향은 천안입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이화학당을 다니고 계셔서 어떻게 입학하셨는지가 궁금했는데, 오늘 선생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유관순 열사님은 공주에서 공부를 하시다가 당시 선교사님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어릴 때 골목대장을 할 정도로 여자지만 씩씩하고 강하셨다고 하고 성실하고 공부도 잘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이화학당에 추천해 주셔서 지금의 전액 장학생인 교비생으로 입학하게 됩니다.
당시 이화학당 학생들은 자치 활동을 많이 했는데 유관순 열사님은 이문회라는 문예 동아리에서 열심히 활동을 했습니다. 문예동아리이지만 토론, 연설, 국제 정서도 배우고 1주일 동안 생각하고 고민 후에 다른 친구들에게 말하는 등 활동을 하는데, 담당 교사이셨던 김란사 선생님에 따르면 유관순 열사님은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셨다고 합니다.
<유관순 우물>에서 느껴보는 유관순 열사님의 마음
교실에서 기본적인 도슨트가 마무리되면 저희가 들어온 반대 문으로 나가면 이화여자고등학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밖으로 나가면 유관순 열사님의 동상이 먼저 눈에 들어 옵니다. 그리고 사실 이곳이 원래는 정문이었다고 말씀하셨고 지금은 학교 담장 옆의 도로인데 원래 그 도로를 넘어서까지 이화학당이었고, 옛날 정문 앞은 원래 운동장이었다고 합니다.

<탐방이 시작되는데, 반대편으로 나갔습니다.>

<너무 예쁜 건물입니다.>

<유관순 열사님 첫번째 동상이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우물이 하나 나옵니다. 우리는 이 우물을 <유관순 우물>이라고 부릅니다. 유관순 우물을 보니까, 윤동주 기념관에서 본 우물이 생각납니다. 우물 안을 보면 사계절이 지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 우물도 원래는 볼 수 있는데, 지금은 복원 공사가 막 시작되어서 출입을 막았습니다. 10월에는 우물 안도 볼 수 있다고 하고, 깊이가 8m로 정동에서 가장 깊은 우물이고 맑은 물이 나오는 우물이라고 합니다.

<유관순 우물로 가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길도 있습니다.>

<원래 우물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그러면 왜 이곳이 유관순 우물로 불리는지 알려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세탁기가 없었으니까 다 손으로 빨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학교 학생들의 빨래감이 없어지는데, 그 이유는 유관순 열사님이 그 빨래감을 가지고 이 우물에 와서 빨래를 하기 때문입니다. 본인 옷도 아니고 친구들의 옷을 빨았던 것은 앞에 말했지만 유관순 열사님은 전액 장학생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돈을 내고 다니는 친구들에게 무엇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단순한 우물이지만 그 설명을 들으니까 지금 이 우물 옆에서 씩씩하게 빨래를 하는 고운 마음의 유관순 열사님이 계시는 것 같았습니다.

<장학금을 받아 미안해서 친구들 빨래해준 유관순 열사님의 마음입니다.>
언제나 당당하셨던 유관순 열사님.
유관순 우물을 뒤로 이화학당 본당 건물 자리에는 현대식 건물이 있는데, 당시 지었던 건물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만약 있었으면 또 다른 문화재와 유관순 열사님과 관련 자료가 더 있을 수 있었는데 조금 아쉽습니다, 이제 노천 극장을 지나면 기숙사 옆에 건물이 바로 유관순 기념관입니다. 이 유관순 기념관 앞에는 잔디 광장이 있는데, 이 잔디 광장에도 유관순 열사님의 동상이 있습니다. 이 동상은 이 학교 동문인 강은엽 님의 작품인데 보통은 태극기를 가지고 있지만 인간 유관순 열사님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해서 맨발에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당당히 서 있는 열사님으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님을 받치고 있는 좌대는 그냥 좌대가 아니고 1886년 이화학당의 개교와 함께 1920년 유관순 열사님의 순국까지를 연대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좌대에는 올라가면 안 됩니다.

<이곳이 원래 사진으로 본 본관이 있던 곳입니다.>

<노천공연장을 지나면 유관순 기념관이 나옵니다.>
유관순 열사님은 고종황제님께서 승하하시고 3.1만세독립운동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까 말했던 이문회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기로 하였고, 당일에 교문 밖에 학생들과 함께 나가려는 것을 외국인 선생님께서 막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님과 4분의 친구들이 담을 넘어서 3.1만세독립운동을 하셨고 일제에 체포되었으나, 외국인 선교사님들의 도움으로 풀려났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곳에서 유관순 열사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계십니다.>
이후에 일제가 학교를 쉬게 만들어서 고향으로 가시는데 고향에 갈 때 독립선언서를 한 부 챙겨가서 마을 어른들에게 서울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천안 아우내에서 만세 운동 계획을 짜고, 옆 마을에 만세 운동에 동참해 줄 것을 말씀했다고 합니다. 4월 1일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3,000명이 모여 만세 독립 운동을 했습니다. 평화적인 시위였으나 일제는 잔혹하게 무력으로 진압해서 유관순 열사님의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오빠와 유관순 열사님도 체포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당당한 모습의 유관순 열사님입니다.>

<맨발이 평화의 소녀상을 생각하게 합니다.>
체포된 후 공주교도소에 계시다가 서대문 형무소로 오시게 됩니다. 그리고 1920년 3월 1일에 3.1만세 독립 운동 1주년을 기념해서 서대문 형무소에서 만세 운동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일을 계기로 모진 고문을 당하셨다고 하고 모진 고문 속에서도 당당하게 일제에게 말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고문에 의해 1920년 9월 28일, 16세의 나이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시게 됩니다. 이제 겨우 16살 고등학생인데 고문으로 순국하셨다고 해서 너무 슬펐습니다.

<밑에는 그냥 돌이 아니라 1920년 순국 때까지 연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가슴 아픈 내용을 쓴 비석도 있습니다.>
현충시설로 인정받은 <유관순 기념관>
이 유관순 기념관은 1963년에 건축을 기획해서 1968년 짓기 시작했지만 돈이 부족해서 중간에 멈추었습니다. 1972년에 위원회를 만들어서 학생, 동창, 시민들이 기부를 통해서 최종적으로 건립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안중근 기념관도 일부는 시민의 기부를 받아서 만든 것처럼 유관순 기념관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들어가면 양쪽으로 2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우선 왼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보면 유관순 열사님의 작품이 있는데, 비즈로 만든 작품입니다. 금기숙 님의 작품으로 ‘유관순 2020’이라는 작품인데, 순국 100주기를 기념해서 제작이 되었습니다. 이화여고 졸업하신 500분에게 비즈를 보냈고 각자가 만들어 보내서 만든 작품으로 2년만에 만들게 된 작품입니다. 연락이 안 된 분도 돌아가신 분도 있었다고 해서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고 하셨습니다.

<제 뒤로 보이는 건물이 '유관순기념관'입니다.>

<최초 건물 만들 때 돈이 많이 들어서 중간에 멈추기도 했습니다.>

<위원회를 만들어 모두의 마음으로 마침내 만들었습니다.>

<500분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비즈 작품입니다.>
2층 벽에는 큰 벽화가 있는데 '결단의 순간'이라는 제목의 김차섭 님의 작품입니다. 유관순 열사님만 그린 것이 아니라 총 9명을 그렸습니다. 실제 지인분들로 구도를 잡은 다음 사진을 찍어서 그림을 그린 방식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림 속 아이는 무서워하고 양반은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님이 독립운동을 했지만 처음부터 독립운동가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하고 같은 사람이었지만 용기를 내 독립운동을 한 의미입니다. 어른도 아닌데 고등학생의 나이로 일제에 당당하셨던 유관순 열사님을 생각하니 저절로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결단의 순간이라는 작품입니다. 독립운동가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해야 할뿐입니다.>

<일본인이 기증한 꽃입니다.>

<꽃에 대한 편지입니다.>
이후에는 유관순 열사님의 태어나서 부터 어릴 때 이야기와 3.1만세 독립 운동과 아우내 만세 운동 등 유관순 열사님의 독립운동과 순국까지의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는데 자유 관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훈장, 명예 졸업장 등도 있고, 유관순 열사님 관련 된 책, 영화 등도 전시되어 있고, 오늘 기사에서 가장 먼저 쓴 유언이 유묵으로도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내려오는 오른쪽 계단에는 학교를 만든 메리 스크랜턴님의 얼굴도 비즈가 있습니다.
유관순 기념관을 나와서 바로 앞에 기숙사가 있는데 이 기숙사 이름이 ‘김점동관’입니다. 김정동님은 이 학교 졸업생이고, 당시 외국인 의사 통역을 이화학당 학생들이 담당했는데 의사 부족으로 사람들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원래는 의사가 꿈이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벼운 병으로도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의사가 꿈이 되어 선교사분을 따라 미국가서 의가가 되어 오셔서 최초 여성병원인 '보구여관'이라는 병원에서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시다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 기숙사 건물에는 부엉이가 있는데, 아마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유관순 열사님의 연대기도 있습니다.>

<골목대장이라는 점이 웃겼습니다.>

<만세독립운동에 대해서도 있습니다.>

<가장 먼저 적은 글이 유묵으로도 되어 있습니다.>

<자유, 사랑, 평화라는 글이 너무 가슴에 닿습니다.>

<김점동관에 있는 부엉이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탐방을 마치고 이화박물관에 다시 왔습니다. 탐방은 모두 끝이 났고, 이제 박물관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1층 복도에는 역대 교장선생님분이 소개되어 있고, 반대 벽에는 이화학당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1층 한 쪽에는 유관순 열사님의 사진, 기념 우표 등 유관순 열사님 관련 자료도 있습니다. 또 2026년 신입생의 명찰 모양으로 이화학당 재학 중이었던 독립 운동가 분들의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유관순 열사님의 이름도 있습니다. 마치 신입생 유관순 열사님이 계실 것 같습니다. 2층은 처음 만들었던 이화학당과 1900년에 새로 만든 건물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3층은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돌아가는 길인데 옆으로 봐도 예쁩니다.>

<담의 기와는 경복궁 재건 때 가져온 기와라고 하셨습니다.>

<1층에 유관순 열사님에 대한 유물과 기념품 등이 있습니다.>

<훈장도 있습니다.>

<명예 졸업장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대문 형무소 계실 때 사진입니다.>

<2026년 신입생으로 우리곁에 다시 오신 독립운동가분들 성함입니다.>

<2026년 신입생 유관순 열사님도 있습니다.>

<복도 오른쪽에는 교장 선생님들이, 왼쪽에는 학교 연대기가 있습니다.>

<최초 건물과 고종황제님이 하사하신 기록입니다.>

<학생이 많아서 새로 만든 학교입니다.>

<기숙사도, 실험실도 있었습니다.>

<가사실이 있을 정도로 당시 최신식 건물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신 유관순 열사님도 계십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다양한 작품을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김점동님의 보구여관 터는 시청역 쪽으로 보면 있습니다.>
9월에 순국하신 16살의 유관순 열사님을 기억합니다.
3.1만세독립운동은 지금의 우리나라가 만들어지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3.1만세독립운동으로 임시정부가 생겨나고 지금 우리나라는 그 때 임시정부를 이어받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3.1만세독립 운동이 중요하고, 이 3.1만세독립운동하면 빠질 수 없는 유관순 열사님을 기억합니다. 특히 겨우 16살의 나이로 그 큰일을 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한편으로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그래서 9월은 유관순 열사님을 생각하고 기리는 마음으로 이화박물관에 방문했습니다.
앞으로는 다시는 절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하고 우리가 더 잘 살고 강한 나라로 만들어야겠습니다. 공기는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하지만 가끔식 공기의 중요성을 잊고 지내는 것처럼 9월에는 16살 나이로 순국하신 유관순 열사님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으로 이화박물관의 탐방프로그램인 <유관순의 길을 걷다.>로 유관순 열사님을 더 자세히 알아 본 미니마우스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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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진은 직접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