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으로 태어난 대한민국
오늘은 8월 15일 토요일이자 81주년 광복절입니다.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많은 분들이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노력하였고 우리는 나라를 다시 찾는 독립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곳곳에서도 광복절 행사를 하고 기념할 곳이 많이 있지만 저는 광복 81주년을 맞아서 아빠와 함께 강북구에 있는 <봉황각>을 찾아 갔습니다. 왜 광복절에 <봉황각>을 찾아 갔는지 궁금하실텐데요. 봉황각은 바로 3.1운동의 시작점이자 3.1 운동이 우리 독립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봉황각 입구입니다.>
1919년 3월 1일에 만세 독립운동이 있었습니다.. 이 만세독립운동으로 우리나라 전 국민이 한 뜻으로 모였고, 전 세계에 우리나라가 독립을 원한다는 것을 알리고 이를 계기로 1919년 4월 11일에는 ‘대한민국’이라는 지금의 우리나라의 이름으로 임시정부가 탄생하게 되고, 이후에 독립운동은 더 체계적으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3.1 운동이 우리나라 독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나라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라고 하고 있어서 3.1운동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광복을 만든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광복절을 맞아 3.1운동의 시작점인 봉황각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입구에는 친절하게 설명도 있습니다.>

<지난 3.1절 행사에 사용한 태극기가 아직 깨끗하게 있습니다.>

<3.1운동의 발상지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별관도 독립운동의 산실입니다.
봉황각은 강북구 북한산 둘레길에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가장 먼저 손기정 기념관의 건물처럼 빨간 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있는데 이곳을 ‘별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건물을 봉황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봉황각은 이 건물 뒤에 있습니다. 이 건물은 1921년에 종로구에 지어진 건물을 1969년에 이곳으로 옮겨졌고, 옮길 때 벽돌에 번호를 매겨서 그대로 옮길 수가 있었고,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6.10만세 운동, 신간회 등 우리나라 독립을 위한 항일투쟁과 관련된 장소입니다. 그 외에도 소파 방정환 선생님께서 어린이 운동을 시작하고 우리나라 최초 월간지 ‘계벽’을 발행했던 곳으로 당시 수 많은 잡지를 발행한 신문화의 장소입니다. 2022년부터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별관도 3.1운동과 독립운동의 장소입니다.>
내부에 들어가면 독립선언서가 크게 인쇄되어 걸려 있습니다. 3.1독립선언 민족 대표 33인 분들의 얼굴과 성함이 있고 그 아래는 독립 선언서가 작게 있습니다. 또 이 별관은 많은 잡지를 발행한 장소인 만큼 당시 발행한 잡지들도 전시되어 있고, 반대 편에는 독립선언서를 크게 인쇄하여 벽에 걸려 있습니다.

<민족대표 33인분의 얼굴과 성함입니다.>

<독립선언서도 크게 인쇄되어 전시되고 있습니다.>
3.1운동을 시작이 된 봉황각입니다.
봉황각은 의암 손병희 선생님이 1912년 지은 건물입니다. 의암 손병희 선생님은 이곳에서 우리나라 독립을 준비하였고,1919년 3.1독립운동의 구상도 이곳에서 하였고 이곳을 거쳐간 지도자들이 3.1운동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봉황각’이라는 이름은 ‘봉황이 깃들어 사는 집’이라는 뜻으로 봉황과 같이 큰 인물을 길러내야겟다는 뜻이 있습니다. 봉황각 안에는 손병희 선생님의 초상화와 민족 대표분들이 회의하는 ‘조선독립숙의도’ 그림이 있습니다. 현판은 일제 강점기 때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이신 오세창 선생님께서 쓰셨다고 합니다. 그 옆에 강선루에서 손병희 선생님께서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의 씨앗을 심고 민족의 목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거대한 시작점이 된다"라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이 봉황각은 우리 서울시의 유형문화 유산이자 국가보훈부 지정 현충시설이기도 합니다.

<저 뒤의 건물이 '봉황각'입니다.>

<원장님께서 찍어주셨습니다>

<손병희 선생님의 말씀도 있습니다.>

<손병희 선생님 입니다.>

<좀 더 잘 나온 '조선독립숙의도'입니다.>

<만세운동을 하다고 독립되지 않지만 해야 한다는 말씀을 한 곳입니다.>
3.1운동을 총지휘한 손병희선생님
손병희 선생님은 1861년에 태어나 1922년에 순국하셨는데, 바로 옆에 묘소가 있습니다. 김구선생님처럼 동학농민 운동을 하였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보성고등보통학교와 동덕여자고등학교 등 민족 학교들을 사서 교육을 통한 실력 양성에 힘썼고, 출판사인 보성사를 세웠는데 이곳에서 독립선언서를 대량으로 인쇄하여 배포하였습니다. 인사동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셨습니다. 이때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으로 순국하셨습니다. 1962년에 건국 훈장을 받으신 순국선열 중에 한 분입니다. 광복을 보지 못하고 순국하셔서 봉황각 옆에 있는 묘소에 가서 참배를 하고 독립운동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별관 뒤에는 손병희 선생님의 업적도 있습니다.>

<봉황각에서 손병희 선생님 묘소가는 길입니다.>

<손병희 선생님의 묘소입니다. 감사다고 인사드렸습니다.>

<입구에는 손병희 선생님의 안내가 있습니다.>
언제나 감사해야 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님
오늘은 우리나라가 독립인 된 날을 기념하는 광복절 81주년입니다. 우리가 독립이 된 것은 친일을 하였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재산과 목숨을 내놓으면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우리는 독립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광복절은 1년에 한번이지만 우리가 가져야 할 고마움은 365일 계속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광복절을 맞이하여 모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광복의 계기가 된 3.1운동이 발상지 봉황각에서 미니마우스기자가 전했습니다. 모든 순국선열분과 애국지사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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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진은 직접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