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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울지마! 올림픽 최초 금메달 90주년<손기정 기념관>을 가다!

미니마우스 2026-08-01 98 공유하기 3

언제나 대한민국 사람, 손기정 선수님

 지금으로 90년 전인 1936년 8월 9일, 독일의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에 한 선수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냅니다. 결승선까지 50m 남았습니다. 결승선까지 거리는 점점 줄어듭니다. 30m, 20m, 10m 그리고 마침내 2시간 29분 19초로 가장 먼저 결승선에 들어가서 2시간 30분 벽을 깬 올림픽 신기록도 작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메달은 우리나라 올림픽의 첫 금메달이 됩니다.


 누구나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면 기뻐 할 것입니다. 올림픽 기록마저 세운 이 선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껏 기뻐해야 하지만 오히려 이 선수님의 얼굴을 슬픈 표정으로 가득합니다. 이 선수님은 바로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님입니다. 그렇다면 왜 손기정 선수님은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따고도 슬퍼했을까요?


 오늘은 올림픽 금메달을 땄지만 슬퍼했던 이유와 다음 주면 8월 9일이 되는데, 이 날이 90년 전에 손기정 선수님께서 독일 베를린에서 금메달을 따신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90년 전 올림픽 마라톤을 우승해서 힘들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언제나 <한국인 손기정>이라고 말하였던 손기정 선수님을 기억하기 위해 8월의 첫 번째 토요일이자 즐거운 8월의 시작인 1일에 우리 서울시 중구에 있는 손기정 기념관을 아빠와 함께 갔습니다.


2012년에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개관한 <손기정 기념관>

 손기정 기념관은 우리 서울시 중구에 있습니다. 이 기념관은 손기정 선수님 탄생 100주년이었던 2012년 10월에 개관하였습니다. 이곳은 원래 양정고등보통학교였는데, 이 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기념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깊은 의미를 가지는 손기정 기념관입니다. 그 이유는 올림픽 금메달 딸 당시에 손기정 선수님이 이 학교 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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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주년을 기념하여 찾아간 손기정 기념관>


 입구에는 손기정 님의 얼굴 동상이 있고, 2층으로 된 기념관은 빨간 벽돌로 되어있어서, 서대문에 있는 딜쿠샤와 비슷합니다. 입구에 들어가면 안내 데스크 앞에 입장권 발매기가 있습니다. 모두 무료 관람하지만 여기서 어린이나 어른 등 관람객을 선택해서 발권을 하면 티켓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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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서 가장 먼저 티켓을 발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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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권을 한 후 전시장 입구에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external_image<90년 전 우승한 메달을 스템프로 열심히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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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베를린 금메달이 나왔습니다.>


첫번째 세계인, 손기정 선수님

 전시는 손기정 기념관은 1층과 2층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1층은 상설 전시관으로 '1전시관'과 '2전시관'으로 나눠서 있는데, 1전시실은 손기정 선수님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고, 2전시관은 독립의 베를린 올림픽 우승에 대한 부분이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2층 특별 전시실에서 ‘달리기 너-머의 여정’이라는 주제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특히 손기정 선수님이 마라톤 선수라서 다른 전시관하고 다르게 전시장이 육상 트랙처럼 구성되어서 관람하는 저희들이 마치 손기정 선수님과 함께 마라톤을 뛰는 것 같은 느낌으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1전시실의 주제는 <첫번째 세계인, 손기정>입니다. 태어나서 달리기 선수로, 베를린 올림픽 우승과 이후 지도자 생활, 그리고 우리나라 올림픽을 위해 노력하신 이야기, 76세의 나이에 우리나라 올림픽 때 성화를 주자로 뛴 이야기와 전 세계를 다니면서 기록을 남기신 이야기들인데, 특히 우리나라 선수로 뛰지 못 했지만 우리나라 올림픽 때 성화 봉송 주자가 되어서 우리나라 경기장에 들어오시는 모습은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손기정 선수님은 지금은 북한인 1912년 8월 29일 신의주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집이 매우 가난했다고 하고, 그래서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기도 했지만 달리기에 대한 꿈을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6학년 때 신의주 대표가 되고, 19세 때 평안도 대표가 되었고, 더 큰 목표를 이후기 위해서 양정보통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는데 이후부터 세계 신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마라톤 완주를 13번했고 이중에 10번을 우승하셨습니다. 특히 1935년 제1회 전 조선마라톤 대회에서는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8회 메이지신궁 대회에서는 2시간 26분 42초로 공인세계신기록을 수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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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신의주에서 태어나셔서 2002년에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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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으신 손기정 선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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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손기정 선수님과 비슷한 포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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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대회에서 상도 많이 받으셨습니다.>


일제의 방해에도 실력으로 올림픽 선수가 되셨습니다.

 일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표가 되는 것을 싫어 했습니다. 다른 분야에 더 좋은 기록을 한 우리나라 선수들이 있었지만 올림픽 나가는 것이 무산되었다고 손기정 선수님께서 증언하셨는데요. 하지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선 손기정 선수님과 남승룡 선수님께서 대표가 되었고, 계속적인 방해를 하지만 실력으로 당당히 대표가 되어서 올림픽에 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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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올림픽 우승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은 세계 어디에서 경기가 열려도 비행기로 빨리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그렇지 않아서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려서 베를린에 갈 수 있었는데, 서울에서 신의주로, 신의주에서 하얼빈을 지나 모스크바에서 다시 베를린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6월 4일 출발한 기차는 중간에 환승하기도 하였고 6월 17일에 되어서 드디어 베를린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기차 상태가 좋지 않아 중간 중간 지연될 때도 쉬지 않고 연습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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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참가하기 위해 가는 것조차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언제나 한국인인 손기정 선수님

 1936년 8월 9일에 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시작됩니다. 시간이 지나서 베를린 주경기장에 한 선수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로 손기정 선수입니다. 2시간 29분 19초로 당시에 2시 30분의 벽을 깨고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상식에서 “손기정”이 아닌 “기테이 손”으로 불리고 우승은 했지만 슬픈 얼굴이었습니다. 손기정 선수님은 월계관수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리셨습니다. 또 이날 함께 출전한 남승룡 선수님은 나중에 “우승한 것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일장기를 가릴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라고도 하셨을 정도로 우리가 금메달과 동메달을 땄지만 선수분들은 슬퍼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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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선수님은 준비된 선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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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입장권과 메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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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은 했지만 한없이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입니다.>


 우승 후에는 일본선수단의 축하 파티를 참석하지 않고, 3위를 기록한 남승룡 선수님과 안중근 의사님의 사촌이신 안봉근 님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승리의 기쁨을 나눴는데, 이때 안봉근 님 집에 걸려 있는 태극기를 처음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안봉근 님은 일본 행사에 참여 하지 않고, 본인의 집에 온 두 분에게 애국지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보는데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나라 선수로 우승을 했는데, 우리나라 우승이 아닌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관람하는 지금의 저희도 가슴이 아픈데 당시 선수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요? 또 선수님들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사랑하신지 알 수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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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근 님 집에서 태극기를 만나서 우셨다고 합니다.>


손기정 선수님과 우리나라 우승으로 기록 시킨 일장기 말소 사건

 손기정 선수님의 우승은 세계적인 사건이었고, 우리나라에서도 특집 기사를 쏟아냈는데, 특히 동아일보에서 많은 양의 기사를 썼다고 합니다, 당시 이길용 기자님께서 사회부 현진건 부장님에게 일본 스포츠 신문에 있는 손기정 선수님의 사진에서 일본 국기인 일장기를 지우자고 하였고, 다시 신낙균 사진 과장님, 화백 이상범님과 상의하여 일장기를 지워서 일본의 승리가 아닌 손기정 선수님 개인의 우승, 그리고 우리나라의 우승으로 기억되게 하였습니다. 물론 이 사실을 안 일제가 관련된 8명을 40일 동안 고문하였다고 하였고, 동아일보는 신문을 만들지 못 하게 됩니다. 이곳에는 이길용 기자님의 동상과 함께 그 당시 일장기 지운 사진이 함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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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손기정 선수님과 우리나라의 금메달로 기억하게 되는 일장기 말소 사건입니다.>    


지도자로 노력하셨고, 우리나라 올림픽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이후에 손기정 선수님은 선수들을 가르치는 지도자가 되셨습니다. 1939년에 “뛰어라 걸어라 캠페인”을 1946년에는 ‘조선마라손(마라톤) 보급회’를, 1947년과 1950년의 보스턴 마라톤과 1948년 런던 올림픽 등에서는 감독과 선수단을 이끌고 가서 우승과 좋은 성적을 내는 등 우리나라 마라톤을 위해 노력하셨고, 저희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바덴바덴이라는 곳에 가셔서 IOC 위원들에게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고 환영을 받았고, 우리나라가 올림픽 개최지에 선정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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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 또 선수단을 이끌고 가서 좋은 성적도 내고 우리나라 올림픽에서도 열심히 노력하셨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올림픽 개막 시 당시에 76세 연세에도 1년간 준비하셔서 성화 봉송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 영상은 볼 수 있는데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셔서 경기장에 들어서는 장면은 너무 감동적이기도 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약간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나라 올림픽 때 성화와 당시 입으셨던 옷과 표창장, 청동 투구 기증에 대한 기록도 있고, 손기정 선수님은 세계를 돌아다니시면서 기록을 남기셨고, 본인 기록도 스크랩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를 다니시면 찍었던 카메라나 여권이나 본이 스크랩한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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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감동을 준 1988년 우리나라 올림픽 성화 봉송 관련 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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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투구도 오랜 노력 끝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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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세계인으로 많은 기록을 남기시기도 했습니다..>


2전시실은 '민족과 함께한 승리'를 보여 줍니다.

 2전시실에서는 ‘민족과 함께한 승리’라는 주제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손기정 선수님이 월계관을 쓴 사진과 사인입니다. 무서운 시대였지만 한글로 ‘손기정' 그리고 ’Korean'이라는 사인에게 얼마나 우리나라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사인을 뒤로 하고 들어가면 영상을 볼 수 있고, 바로 베를린 올림픽에서 딴 메달과 상장, 당시 머리에 썼던 월계관, 부상으로 받은 청동 투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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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도 손기정 선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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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우승 기념 상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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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첫 올림픽 금메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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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머리에 쓰셨던 월계관 입니다.>


 이 청동 투구는 국립중앙박물관을 갔을 때에도 그곳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또 외국 유물이지만 우리나라 보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당시에 마라톤 우승자에게 이 청동 투구를 주기 했지만 올림픽 규정에 메달 외 받을 수 없다고 해서 실제로 받지 못 하고 베를린에 있는 박물관에서 보관하다가 나중에 손기정 선수님이 이 투구에 대해서 알게 되고, 이후에 우리나라 언론과 대한올림픽위원회 등이 손기정 선수님을 도와서 1986년 베를린 올림픽 50주년을 기념하여 다시 받을 수 있었다고 손기정 선수님께서 기증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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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받은 청동 투구인데 나중에 돌려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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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투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데, 2024년 2월에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한국인에게 희망을 준 마라톤 우승

 또 1936년 마라톤 경기 당시의 현장을 흑백사진으로 각 킬로미터마다 순차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21km까지 1시간 12분 19초로 2위, 25km에 1시간 24분 49초로 3위가 되었다가 다시 28km에서 2위가 되었다가 31km부터 계속 해서 1위로 나가고 마침내 1시간 29분 19초로 1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니까 당시에 제가 베를린에서 손기정 선수님이 뛰는 모습을 직접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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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올림픽 금메달을 땄습니다.>


 손기정 선수님의 금메달은 나라를 빼앗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우리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주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취재 경쟁도 있었고 전국 각지에서 축하는 편지와 환영회 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과 같은 분들도 칭찬을 하고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김구선생님은 “조선사람이면서도 조선인 행세를 못 해서 가슴이 아파 우셨다”고 하셨던 것처럼, 손기정 선생님은 가슴에 일장기가 달려 있었는데 시상대에서 받은 월계수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렸습니다. 이후 손기정 선수님도 우승 소감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슬퍼서 결국 눈물이 흘리셨다고 하는데, 인터뷰와 사인 요청에는 항상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시고 사인도 우리나라 말로 본인의 이름을 적으셨다고 합니다. 이 분들은 금메달과 동메달을 달성했지만 기뻐할 수 없고, 오히려 우리나라를 빼앗은 나라의 대표로 출전했을 이 분들의 슬픔이 지금도 느껴지는 것 같아서 슬퍼졌습니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월계관을 쓰고 약간 슬픈 표정의 선수님 사진이 있는 데 “나는 한국인이다.”라는 말이 있고 당시 사인이 있는데 <손기정 Korean>이라는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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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칭찬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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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도 손기정이라는 우리나라 말로 하신 영원한 한국인 손기정 선수님입니다.>


2층 특별 전시실에서 ‘달리기 너-머의 여정’이라는 전시

 2층은 특별 전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림픽 우승으로 힘들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고, 기쁨을 주었던 이야기와 이후 런던 올림픽, 헬싱키 올림픽, 뭰헨 올림픽, LA 올림픽에 초청을 받아서 우리나라를 세계에 소개하였고, 우리나라 올림픽에 도움을 주고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성화 봉송 주자로 역할을 하신 이야기들이 흑백 사진으로 전시되고 있습니다. 전시를 다 보면 손기정 기념관에 남기는 말이 있는데, 저도 남기면서 관람을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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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는 특별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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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했던 올림픽 우승입니다.>


<우승에서 할아버지가 된 선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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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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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올림픽 때 성화 봉송 주자로도 활약하셨습니다.>


 전시는 이렇게 끝나는 것 같지만 사실 야외 전시가 더 있습니다. 앞에서 글을 남겼지만 남승룡 선수님이 손기정 선수님이 일장기를 가릴 수 있어서 부러워했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때 받은 화분을 옮겨 심어서 지금처럼 자란 나무가 있습니다. 또 심훈 소설가님께서 손기정, 남승룡 선수님의 올림픽 우승과 3위를 차지한 것에 대한 시비, 그리고 손기정 선생님의 동상이 있습니다. 이렇게 실내 전시와 실외 전시를 모두 보면 전시 관람이 끝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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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는 심훈님께서 쓰신 글이 비석이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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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하실 때 받은 월계수인데 서울시 자연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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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때의 모습을 담은 동상입니다.>


이제는 울지마! 금메달의 국적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광복 81주년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아직 안중근 의사님은 우리 곁에 오시지 못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님을 찾아서 모셔와야 합니다. 그런 것처럼 손기정 선수님도 아직 올림픽에서는 일본인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를 침범한 것은 우리가 원한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한 것으로 모두 무효입니다. 그래서 당시 올림픽에는 일본인으로 기록되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로 바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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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찾기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손 기정 기념관 1층에서도 손기정 선수님의 국적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울고 있는 금메달에게 웃음을 찾아줘야 합니다. 선수님들은 돌아가셨지만 올림픽에 등록된 손기정 선수님과 남승룡 선수님의 국적을 우리나라로 바꿔야 합니다. 그 분들은 우리나라 사람이지 일본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루 빨리 이 분들의 국적이 우리나라로 바뀌어서 금메달의 웃음을 찾아야 줘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90년 전 우리나라 첫 번째 올림픽을 맞아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던 금메달과 언제나 한국인이었던 손기정 선수님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 손기정 기념관을 찾은 미니마우스기자였습니다. 하루 빨리 손기정 선수님의 국적이 우리나라로 회복되어 금메달이 활짝 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백호우와

*모든 사진은 직접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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