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문화역 서울 284의 건물 외관 ⓒ 이주하 기자의 가족
여러분, 옛 서울역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저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철도교통의 중심이었던 옛 서울역이 100주년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듣고, 옛 서울역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7월 5일에 ‘문화역 서울 284 - 100년의 시간여행’이라는 ‘어린이 공간투어’에 참여했답니다. 참고로 이 프로그램은 옛 서울역에 얽힌 교통과 역사 이야기를 초등학생 고학년의 눈높이로 소개하는 공간 역사해설 프로그램이에요.
그럼 옛 서울역에 대해 함께 알아볼까요?
‘서울역’의 초기 모습, ‘경성역’이 만들어진 배경
▲경인선 개통 직후 남대문역 (사진출처: 서울역사편찬원)
1804년 영국에서 증기기관이 발명된 지 거의 100년만인 1899년에 서울과 인천을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개통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오늘날 ‘서울역’의 시초가 된 곳은 1900년에 세워진 ‘남대문정거장’이었는데, 당시 시골 간이역 같은 목조건물이었다고 해요. 철도는 당시에 일본의 자원수탈과 침략의 도구로 이용되었지만, ‘경부선(1905)’, ‘경의선(1906)’이 차례로 개통하면서 철도교통은 계속 발전해나갔다고 해요. 서울이 커지면서 일제는 남대문정거장을 허물고 1925년에 ‘경성역’을 세웠는데, 이 때 지금의 ‘서울역’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해요.
근대 건축물의 상징으로서의 ‘서울역’
▲ 완공된 경성역(1925) (사진출처: 서울역사편찬원)
1925년에 지어진 당시의 ‘경성역’은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돔, 첨탑과 같은 요소가 합쳐진 근대 건축물의 상징이었다고 해요. 지하1층, 지상2층으로 된 본관과 3개의 승강장, 부속건물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역이었죠. 이 곳은 덕수궁 석조전과 중명전, 명동성당과 더불어 개항 이후 서울에 들어선 대표적인 서양식 건축물 중 하나라고 해요. ‘경성역’은 일제에 의해 스위스의 ‘루체른 역’을 본따서 만들어졌어요.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경성역’이라는 이름에서 해방 후 1947년에 지금의 ‘서울역’으로 이름을 바꾸었어요. 그리고 서울역은 1960-70년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철도 이용객이 증가하면서,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대대적인 보수 및 개축공사를 실시했어요. 1985년에는 태풍의 피해로 돔이 파손되어서 공사를 하기도 했다고 해요.
현재 ‘문화역 서울 284’로 재탄생한 서울역
▲ 현재 '문화역 서울 284'의 모습 ⓒ 이주하 기자
2004년에 1월에 KTX가 개통되고 KTX 서울역이 새로 들어서면서, 옛 서울역은 2011년에 ‘문화역 서울 284 ’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어요. ‘문화역 서울 284’라는 이름은 문화 교류의 중심역이라는 상징성과 옛 서울역의 사적번호 284를 결합해서 만든 것이라고 해요. 시민들이 사적 번호의 숫자가 적을수록 중요한 유물이라고 오해하기 때문에 현재는 284라는 번호를 잘 사용하고 있지 않는다고 해요. 지금은 여기서 예술작품, 공연, 전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이 곳은 이렇게 ‘경성역’이였다가 ‘서울역’을 거쳐서 ‘문화역’서울’284’가 되었어요.
옛 서울역은 어떤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나?
중앙홀
▲ 옛 모습으로 복원된 중앙홀 내부 (사진출처: 문화역 서울 284)
▲ 중앙홀 스테인드글라스 ⓒ 이주하 기자
중앙홀은 바닥에서 돔까지의 높이가 13m가 넘고 화강암 기둥이 12m가 되는 웅장한 곳으로 서울역 정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볼 수 있어요. 장식이 거의 없으며 중앙홀의 기둥이 좌우대칭 구조이고, 천장에는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있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처음에는 봉황문양이 있었다가 6.25 전쟁 때 파괴가 된 후, 2011년에 새롭게 복원이 되었다고 해요. 스테인드글라스와 기둥이 참 잘 어우러졌어요. 예쁘지 않나요?
매표소
▲ 경성역 신축 당시 출찰실(매표소) 정면 모습 (사진출처: 문화역 서울 284)
서울역 매표소는 중앙홀 정문 양 옆으로 2개가 있었다고 해요. 그때는 매표소를 ‘출찰실’라고 불렀어요. 당시에도 기차 행선지와 출발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다고 해요. 기차표를 구입한 승객들은 좌석 등급에 따라 대합실로 이동해 기차를 기다렸다고 해요. 요즘과 비슷한 것 같나요?
3등 대합실
▲ 현재 작품 전시중인 3등 대합실 ⓒ 이주하 기자
▲ 경성역 신축 당시 사진첩에 실린 3등 대합실 모습 일부 (사진출처: 문화역 서울 284)
3등 대합실은 일반석 승객이 대기하던 장소로 매점과 의자들이 있었다고 해요. 공간은 넓었지만1,2등 대합실보다는 화려하지는 않았어요. 천장은 철근 콘크리트가 노출되어 있는 형태였는데, 당시에는 첨단 건축 기법이었다고 해요.
1,2등 대합실
▲ 현재 작품 전시 중인 1,2등 대합실 ⓒ 이주하 기자
▲ 경성역 신축 당시 사진첩에 실린 1,2등 대합실 모습 일부 (사진출처: 문화역 서울 284)
1,2등 대합실은 특실 승객을 위한 공간이어서 장식도 매우 화려했어요. 전등도 꽃봉우리 같은 모양이었어요. 마라톤 선수 ‘손기정’님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서 2등실을 사용했다고 해요. 그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뉘기 전이여서 기차를 통해 유럽까지 갈 수 있었어요. 만약에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면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로 다시 유럽까지 갈 수 있겠죠?
부인대합실
▲ 부인대합실 내부 (사진출처: 문화역 서울 284)
부인대합실은 1,2등석 표를 구매한 여성 이용객들을 위한 장소에요. 나무로 인테리어가 되어있었고, 작지만 아늑했어요. 옛날에는 남녀를 구분해서 기차를 기다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광복을 한 후에는 남녀와 좌석 등급을 구분하지 않고 일반대합실에서 모두 같이 기차를 기다렸다고 해요. 요즘 시대와 점점 비슷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않나요? 부인대합실이 사라지고 나서 이 곳은 여객과장실, 부역장실로 바뀌었다고 해요.
역장실
▲ 옛 모습으로 복원된 역장실 내부 (사진출처: 문화역 서울 284)
역장실은 역장의 개인 집무실이였어요. 역무원 사무실은 대부분 2층에 있지만, 역장실은 1층 귀빈실 맞은편에 있었는데요. 그 이유는 역장은 역을 찾은 귀빈들을 직접 응접하는 역할도 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역장실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각해보니 서울역을 건축할 때 사람들의 역할까지 고려했다는 점까지 생각했다니 놀라웠어요.
귀빈실
▲ 옛 모습으로 복원된 귀빈실 내부 (사진출처: 문화역 서울 284)
▲ 귀빈실 내부에 있는 거울과 대리석 벽난로 ⓒ 이주하 기자
귀빈실에서 대한제국 황족과 이승만, 박정희 등 역대 대통령들이 기차를 기다렸다고 해요. 대한제국의 마지막 옹주인 ‘덕혜옹주’는 일본으로 강제로 유학을 가기 전에 귀빈실에 기차를 기다렸어요. 귀빈을 모시던 공간이어서 그런지 대리석 난로와 거울이 있었어요. 거울은 공간을 크게 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고 해요. 그리고 대리석 난로는 100년부터 지금까지 부분복원이 있었지만 거의 100년 전 그 상태랍니다. 커튼 아래에 라지에이터(히터)도 있었어요.
귀빈예비실
▲ 경성역 신축 당시 사진첩에 실린 귀빈예비실 모습 (사진출처: 문화역 서울 284)
귀빈예비실은 귀빈들을 도왔던 수행원들이 대기하던 공간으로 귀빈실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어요. 또 귀빈예비실은 귀빈들을 위한 식당의 역할도 했는데요. 식사와 간식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해요.
서측복도
▲ 서축복도에서 플랫폼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의 모습 ⓒ 이주하 기자
서측복도에는 플랫폼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어요. 지금은 플랫폼으로 내려갈 수는 없었지만 창문을 통해 플랫폼을 힐끔 볼 수 있었어요.
그럼 이제 1층을 다 둘러보았으니, 2층으로 가볼까요?
복원전시실
▲ 경성역 2층에 위치했던 이발실 내부. 현재는 복원전시실로 사용 (사진출처: 문화역 서울 284)
▲ 현재의 복원전시실의 모습 ⓒ 이주하 기자
복원전시실에서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했던 서울역 복원 과정을 볼 수 있었어요. 복원과정에서 발굴한 유물 등등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벽에는 화장실 배수로 흔적도 있었고, 미니 스크린을 통해서 중앙홀에 있었던 스테인드글라스의 제작과정을 볼 수 있었어요. 너무 신기했어요.
그릴
▲ 1980년대 양식당 그릴 풍경 (사진출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현재 작품전시 중인 그릴의 모습 ⓒ 이주하 기자
그릴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이었어요. 개화기 당시의 ‘모던보이’랑 ‘모던걸이’라면 한 번쯤 꼭 와보고 싶어했던 장소라고 해요. 우리나라 최초의 음식 운반용 엘리베이터도 있었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레스토랑과 음식 운반용 엘리베이터가 서울역 ‘그릴’에 있었다니 놀라웠어요.
소식당
▲ 그릴 옆쪽에 위치한 2층 소식당 (사진출처: 문화역 서울 284)
그릴이 있었던 공간 옆에 있는 복도는 ‘소식당’으로도 사용되었어요. 작은 테이블이 있어서 여기서도 식사를 할 수 있었다고 해요. 창문을 통해서는 중앙홀과 승강장도 볼 수 있었는데요. 탁 트여있어서 그릴보다 전경이 훨씬 좋을 것 같았답니다. 시계도 창문을 통해서 한 눈에 볼 수 있었고, 스테인드글라스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답니다. 소식당의 흔적은 지금은 없지만,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니 그 당시의 모습이 머릿속에 잘 그려졌어요.
파발마 시계
▲ 현재도 작동되고 있는 파발마 시계 ⓒ 이주하 기자의 가족
서울역 외관에 있는 시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시계의 별명은 ‘파발마’였는데요. 6.25 전쟁 때 시계를 지키기 위해서 직원들이 시계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챙겨서 피난을 갔다고 해요. 서울역 외관에 있는 시계는 보면 작아 보이지만 지름이 160cm라고 해요. 한 때는 한국에서 가장 큰 시계였다고 해요. 그러니 시계를 나누어서 가져갈 수 밖에 없었겠죠? 저보다 큰 시계가 있다니 상상하기가 어려웠어요. 이 때 3개월을 제외하고는, 시계는 현재까지도 계속 작동하고 있다고 해요.
역 뒤편의 총알 흔적
▲ 한국전쟁 당시 총탄의 흔적 ⓒ 이주하 기자의 가족
6.25전쟁 때 쏜 총알이 역 뒤편에 박혀 있었던 자국을 유리관을 통해 볼 수 있었어요. 전쟁을 할 때 기차역을 주로 먼저 공격하는데요. 그 이유를 아시나요? 그 이유는 전쟁 물자와 무기를 잘 운반하지 못하도록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해요. 6.25전쟁의 아픔에도 잘 버티고 이겨낸 서울역이 대단해요.
이렇게 알차고 유익했던 ‘문화역 서울 284- 어린이 공간투어’가 끝났어요.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저는 ‘어린이 공간투어’를 통해서 우리 역사의 한 조각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부모님께서는 옛 서울역의 추억을 되짚어볼 수 있으셔서 뜻 깊으셨다고 해요.
▲ ‘문화역 서울 284 - 100년의 시간여행’ 어린이 공간투어 포스터 (사진출처: 문화역 서울 284)
‘문화역 서울 284 - 100년의 시간여행’ 어린이 공간투어는 2025년 7월5일(토), 13일(토), 20일(일)에 각각 낮12시와 2시30분, 하루에 2차례만 운영해요. 회당 15명이 정원이고, 약 50분 동안 전문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어요. 참가비는 무료이고, 예약을 꼭 해야 참여가 가능해요. 그리고 초등학생은 꼭 보호자와 함께 투어를 해야 한답니다.
▲ '우리들의 낙원' 전시 포스터 (사진출처: 문화역 서울 284)
참고로 현재 ‘문화역 서울 284’에서는 ‘우리들의 낙원’이라는 주제로 21명의 작가들이 선보이는 회화, 설치, 미디어 작품들이 7월27일까지 전시되어 있어요. 옛 서울역의 역사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시회가 궁금한 친구들은 ‘문화역 서울 284’ 누리집을 참고해주세요.(문화역서울284)
▲서울역 롯데마트 토이저러스에 위치한 해치 캐릭터샵 앞에서 ⓒ 이주하 기자의 가족
지금까지 이주하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출처 : 문화역 서울 284 누리집, 서울역사편찬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본인 및 가족 촬영
자료 출처 : 문화역 서울 284 팜플렛, 문화역 서울 284 누리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