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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님을 만나는 전태일 기념관.

미키마우스301 2025-04-13 241 공유하기 8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님을 만나다.

 작년 학교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대해 배운 적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안에 들어가는 경제 강국이고 일하시는 분들에 대한 법도 무척 잘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쟁 이후에 먹고 살기 어려울 때가 있었고 또 지켜져야 하는 법도 잘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도 배우고 알고 있는 전태일 님은 바로 이때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을 하고 일을 하는 분들이 법이 정한 일하는 시간을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하신 분입니다. 단순하게 법이 지켜지게 노력한 것 뿐만 아니라 그때는 저희같은 어린이들도 학교도 가지 못 하고 일을 했었는데, 제대로 먹지도 못 했다고 합니다. 이때 전태일 님은 일하는 어린 여공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도록 재단사가 되려고 하였고, 또 풀빵을 사주고 집까지 걸어갔던 착한 마음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이러한 전태일 님을 기억하기 위하여 서울시 예산으로 2019년 4월 30일에 종로에 전태일 기념관을 만들었습니다. 이 기념관은 예약 없이 방문하여 볼 수 있지만 도슨트도 있어서 전태일 기념관 홈페이지를 통해서 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예약이 가능하고 시간은 11시, 13시, 14시, 15시 이렇게 4회 가능합니다. 2025년 4월 12일 토요일에 15시로 예약을 하였고, 아버지와 저와 동생이 방문했습니다.


<1층 입구에는 이렇게 동상이 있습니다>


<1층에는 전태일 기념관에 하고 싶은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인권을 위해 노력하신 전태일 님

 전태일 기념과 입구에는 전태일 님의 동상이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동생과 기념 촬영을 하고 안에 들어갔습니다. 1층에서 친절하게 저희를 맞이해 주시고 도슨트는 3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3층에서도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3층은 총 4개의 주제로 나눠서 상설 전시와 특별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전태일 님의 연혁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전태일 님은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께서 사업을 하셔서 완전 어릴 때는 가난하지 않았다고 하고 4살 때 찍은 사진을 보면 좋은 옷도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해서 많은 이사를 하게 됩니다. 부산에서 살다가 서울에서 살기도 하고 다시 대구에서 살다가 서울에서 살게 됩니다. 무려 이사를 25번이나 했다고 했습니다. 또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교복 납품 사기를 당해서 더 가난해지게 되어서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 했고 구두닦이, 꽁초 줍기, 신문팔기, 리어카 밀기 등 다양한 일을 했고 제대로 된 집도 없어서 잠도 덕수궁 수위실, 서울역, 중앙시장 야채가게 주변 등에서 잤다고 합니다.


<전태일 님의 전체 생애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합니다.>


<무려 25번을 이사했다고 합니다.>


차비 대신 풀빵을 나눠주고 12.5km를 걸어서 퇴근한 전태일 님

 이후에 다음 테마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평화시장에서 견습공으로 일을 할 때의 일입니다. 이때 저희 같은 어린 여공들이 제대로된 급여도 못 받고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 하고 일하는 환경이 안 좋은 것에 대해 슬퍼합니다. 이때 월급이 50원이었는데, 당시 커피가 50원, 자짱면이 100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싱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1년만에 미싱사가 되어 월급 7,000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태일 님은 공장 한 구석에서 잠을 자는 어린 여공들이 밤잠을 제대로 못 자고 오전만 되면 졸면서 작업하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 풀빵 30개를 사서 나눠졌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비가 없어서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쌍문동 집까지 12.5킬로를 걸어서 갔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을 바꾸기 위해 재단사가 되려고 했는데 당시 재단사는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단 보조가 되어 월급도 3,000원으로 낮아졌지만 1년만에 재단사가 되었습니다. 이 테마에는 밟으면 불이 켜지는데 풀빵을 나눠주고 걸어가시던 길의 가로등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이곳은 평화시장 시절 기록인데, 풀빵을 사주고 걸어가던 길의 가로등을 형상화 했습니다>


<차비로 풀빵을 사서 나눠주고 매일 12.5km를 걸어갔습니다.>


어린 여공을 위해 재단사가 된 전태일 님

 다음으로는 재단사가 된 전태일 님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당시 어린 직공들이 일하던 곳으로 미싱은 3명이 한 팀이 되어서 일하는데, 매우 작은 곳입니다. 다락은 있지만 환풍 시설과 창문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지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하루에 15시간 이상 일을 했다고 하는데 하루 24시간에서 15시간을 일했다는 것은 매우 놀랐습니다. 밥 먹는 시간을 생각하면 자는 시간도 부족했을 것입니다. 이때 여공이 피를 토해서 병원을 갔는데 폐병이었습니다. 회사에 말을 하니 여공을 해고시켰습니다. 그래서 전태일 님은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재단사가 되었는데 한계를 느꼈다고 합니다. 이때 아버지께서 노동법을 이야기 해서 노동법을 구매했는데 모두 한자로 되어 있었고 “대학생 친구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어린 여공들을 위해 재단사가 되었습니다.>


<창문도 없고 환풍도 없지만 2천여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평화 시장 인권 지킴이가 된 전태일 님

 마지막은 노동법이 지켜지도록 노력했던 전태일 님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하루에 8시간을 일해야 하고 한 달에 두 번은 쉬어야 했는데, 한 달에 한번 쉬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노동법을 모르고 살았다는 의미에서 바보회’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노동운동을 해서 더 이상 평화시장에서 일을 하지 못했고, 떠나 있으면서 소설도 쓰고 사업 계획서도 썼습니다. 평화시장에서 일하는 환경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방송국에게 편지를 쓰고 심지어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없었고 전태일 님은 결국 1970년 11월 13일에 분신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이후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으로 어머님께 본인이 못한 소원을 이뤄달라고 하셨고 전태일 님의 어머님이신 이소선 님께서 계속 일하는 분들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특히 이소선 님과 영화 1987에도 나오지만 박종철 님의 아버지와 이한열 님의 어머님이 삼총사가 되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하셨습니다. 전태일님의 사건 이후 교수님들 등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임금을 오르게 할 수 있었습니다. 끝으로 해설 선생님께서는 전태일 님의 정신을 <사랑, 연대, 행동> 이 3가지 단어로 말하셨습니다.


<일을 하면서 문제점을 기록하였습니다.>


<설문조사를 통해 평화시장의 문제점을 기록하고 사회 각계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지켜지지 않는 노동법에 대해 부당함을 알리고자 합니다.>


<돌아가시면서 어머님께 유언을 남겼고 어머님도 돌아가실 때까지 인권을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제 머리 위 세로 사진에 전태일님의 어머니, 박종철 님의 아버지, 이한열 님의 어머니가 계십니다.>


<전태일 님이 꿈꿨던 모범업체 태일 피복입니다.>


평화시장 앞에 동상에도 가 보았습니다.

 이후에는 2층을 둘러봤습니다. 이곳에는 책들이 있고 전태일 님이 실제로 하지 못 했긴 했지만 당시 사업계획서의 <태일 피복>이 있다면 만들었을 제품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또 이곳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계도 있습니다. 이렇게 전태일 기념관에서 다 보고 오늘은 전태일 님에 대해 배웠으니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평화 시장에는 전태일 님의 동상이 있는데 그곳으로 이동 했습니다. 다른 동상과 다르게 다리가 없는데 다리는 우리가 지나가는 다리를 형상화했기 때문입니다. 비는 오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2층에는 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모범업체 태일 피복에서 만들었을 것 같은 상품들입니다.>


<실제 평화시장 입구에 돌아가신 곳입니다.>


<동상은 다리가 없는데 우리가 건너가는 다리를 형상화 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한다는 것은 국민의 4대 의무 중에 ‘노동의 의무’에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은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있고 경제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법을 지켜야 합니다. 이 법을 지킨다는 것은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법을 지키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잘 사는 것은 하루에 15시간 이상씩 일을 했던 그 분들이 있어서 일 것입니다. 그리고 풀빵을 사주고 12.5km를 걸어가고 그 분들을 위해 재단사가 되어 법이 지켜줄 수 있도록 노력했던, 남을 위해 희생한 전태일 님도 언제나 <아름다운 청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이상으로 비는 오지만 전태일 기념관과 동상에서 미키마우스301 기자가 전해드렸습니다.


토끼 고마워~


*모든 사진은 직접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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