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잔망루피 기자입니다. 여러분은 G 밸리 산업박물관을 아시나요? 우리나라 산업의 역사를 담은 G 밸리 산업박물관은 구로구에 위치한 박물관인데요,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대형 스크린이 저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들어가면 1968년에 있었던 한국무역박람회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변변한 공장 하나 없던, 논과 밭뿐이던 구로동에 산업단지가 만들어진 이후 하늘 높이 굴뚝이 올라가고 물건을 실은 트럭이 줄을 섰습니다. G 밸리의 시작이자 구로공단이 생긴 다음 해, 제 1회 한국무역박람회가 열렸습니다. 이것으로 한국 수출 무역의 성과를 알릴 수 있었답니다.
구로공단이 생기자, 사람들은 전국 각지에서 구로에 모였습니다. 6.25 전쟁 이후 형편이 좋지 않았던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을 위해 여러 가지 물품을 만들어 수출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습니다.
하늘에서 본 구로공단입니다. 1960년대에는 논과 밭밖에 없었지만 점점 건물들이 생겨나더니 맨 뒤에 있는 현재에는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곳이 되었습니다.
당시 구로공단의 여러 공장에서 생산하던 물건들입니다. 고무제품, 섬유제품, 유리제품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쓰는 대부분의 물품을 우리나라에서 생산했다고 합니다. 보온병을 '마법병' 이라고 표시하는 등 그때와 지금의 물건 표기가 다른 것도 많아 신기하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입니다. 여러 가지 인형들과 기계가 있는 이곳은 당시 구로공단에서 생산하던 완구들을 전시해 놓은 것인데요, 인형들이 정말 많죠? 인형 같은 완구는 아이들이 쓰는 것이기 때문에 안전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야 해서 숙련된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중앙에 있는 기계는 인형을 완성한 후 검수를 하던 기계라고 합니다.
그 무렵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생산하던 것은 바로 '가발' 이었습니다. 이 가발은 만들기 쉬워 보이지만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야 하는, 제작 과정이 복잡한 물건인데요, 당시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가발이 고급 가발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그 무렵 우리나라에는 전화기가 보급되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다이얼 전화기였고, 동그란 판 같이 생긴 것에 뚫려있는 구멍에 손을 넣어 전화를 거는 방식입니다. 다양한 전화기들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80년대에는 전자기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여 TV 를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가정집에 TV가 보급되기도 했고요. 그 당시에는 TV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도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TV는 가구 느낌이 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로공단의 역사가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구로공단은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우리나라에서 급하게 만든 산업단지였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은 채로 노동자들을 혹사시켰는데요, 노동자들은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른바 '벌집' 에 살며 하루종일 일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6일동안 파업에 참여했는데요, 그들은 그들이 처한 현실과 사회적 울분을 동맹파업으로 표출하여 그들의 연대의 목소리를 쌓아갔습니다. 비록 44명의 노조 간부가 구속되고 1500명의 조합원들이 해고되는 아픔이 있었으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급여 기준을 정해달라는 외침 덕분에 이듬해에 최저임금 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90년대부터는 첨단 산업이 발전하며 '구로공단' 이 아닌 '구로디지털단지' 와 '가산디지털단지' 가 생기게 됩니다. 지금도 디지털단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답니다!
마지막 G 밸리 익스플로러에서는 G밸리 산업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전체 자료를 한곳에서 열람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터뷰와 구로공단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 등 많은 것들에 있답니다!
보드게임도 즐길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저와 함께한 G밸리 산업박물관 탐험, 어떠셨나요? 여러분도 한번 들러서 우리나라 산업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네이버 플레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