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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두면 보이는 서울의 새

서울 탐구생활 2023-11 163 공유하기

늦가을 창경궁에서 만난 선물 같은 새들

창경궁을 탐조하다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적이 두어 번 있다. 한 번은 울긋불긋한 단풍 낙엽이 궁궐을 수북이 덮던 늦가을 오후였다. 해가 부지런히 서쪽 하늘로 기울 무렵 식물원 주변에서 동박새 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멈추고 감나무를 살피다 동박새 몇 마리를 만났다. 감나무에 달린 홍시를 먹느라 분주한 동박새들을 조용히 쌍안경 너머로 지켜보는데, 까만 눈동자를 감싼 하얀 눈두덩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서울에서 동박새를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또 한 번은 늦가을 오전에 춘당지 주변을 산책하던 중 물총새를 만난 적이 있다. 춘당지 가장자리에 묶어 놓은 줄 위에 오도카니 앉아서 물속을 응시하는 물총새의 푸른색 깃은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쌍안경 안으로 물총새가 들어오나 싶었는데, 갑자기 물총새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고는 곧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물고 줄 위로 올라가 먹어 치우는 게 아닌가. 생생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던 그 풍경을 기억할 때마다 행복하다. 그리고 춘당지에는 언제 가도 만날 수 있는 원앙 수십마리 가 있다. 물 위를 헤엄치는 원앙이 보이지 않는다면 춘당지 가운데 있는 섬을 살펴보길 바란다. 원앙은 발에 물갈퀴가 있어도 나뭇가지에 잘 올라가고, 나무 구멍에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뉴요커도 감탄한 원앙

2018년 가을 뉴욕 센트럴 파크에 난데없이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새 한 마리를 보려고 사람들은 길게 줄 서는 걸 마다하지 않았다. 대체 어떤 새였을까? 창경궁 춘당지의 터줏대감 원앙이었다. 원앙은 동아시아가 주 서식지인데 어쩌다 태평양 건너 미국 동부까지 가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새들은 이동 중 기류에 휘말리거나 다른 여러 이유로 이따금 방향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한다. 센트럴 파크에 도착한 원앙은 게다가 수컷이었다. 새는 대체로 수컷이 화려하다. 특히 원앙 수컷은 인공적으로 만든 장난감 같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과하게 화려하다. 뉴욕에 원앙만큼 아름다운 새가 설마 없었을까? 그럼에도 뉴요커들이 원앙에 열광한 까닭은 ‘특별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선 결코 볼 수 없는 새의 뜻하지 않은 방문인 데다 각별한 아름다움까지 장착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뉴욕은 맨해튼의 월가로 상징되는 세계 금융의 허브다. 그런 뉴욕에 자리한 센트럴 파크에는 200종 이상의 조류가 머물고, 1만8,000그루 이상의 나무가 자생한다. 나무와 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더불어 수많은 곤충과 야생동물이 공존하게 되니 공원은 살아있는 자연사박물관인 셈이다. 뉴욕에는 국립오듀본협회 본부도 있다. 새 그림을 그렸던 화가 존 제임스 오듀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협회로, 새를 비롯한 야생동물과 그들의 서식지를 보전하는 환경 단체다. 이러한 배경이 탐조를 즐기는 인구가 증가하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동양의 새 한 마리가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 평소에 탐조를 즐기는 이가 적었다면 그토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서울 도심에 사는 새

서울은 어떤 도시일까? 여느 대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게 고층 빌딩과 도로를 가득 채운 자동차가 연상되는 회색 이미지를 서울에 살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이 갖고 있는 것 같다. 자본의 중심이라 생각했던 뉴욕에서 새 한 마리에 그토록 많은 이가 열광할 거라는 생각을 못 했듯이 나조차 서울에 새가 얼마나 많은지 알기 전까지 서울이라는 도시와 새를 연결 짓지 못했다. 서울에 ‘도’ 새가 많이 살고 있고, 계절 따라 오간다는 걸 알게 되면서 든 생각은 새가 없었던 게 아니라 새에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젠 자동차 소음이 가득한 광화문 네거리에서 박새와 참새 소리를 듣는다. 내 귀가 특별한 게 아니라 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귀를 활짝 여니 자동차 소음 사이로 새 소리가 들린다. 서울에서 물총새, 굴뚝새, 동박새를 만난다. 우리나라 법정 보호종인 황조롱이도 서울에 살며 새끼를 친다. 여름이면 파랑새 · 흰눈썹황금새 · 솔부엉이 · 꾀꼬리 · 새호리기가 서울에 오고, 겨울이면 새매 · 흰죽지 · 큰고니가 찾아온다. 운 좋으면 흰꼬리수리도 만날 수 있다.

탐조 팁!
창경궁처럼 많은 이가 찾는 곳이라면 인파가 덜 붐비는 오전이나 오후 해 질 무렵이 탐조하기 좋다. 자연색과 비슷한 녹색·갈색 계열의 옷을 입고, 적당한 거리에서 쌍안경으로 새들을 관찰한다.

풍성한 탐조가 가능한 도시, 서울

새를 보러 멀리 섬으로 떠나거나 바닷가 · 갯벌 · 습지 등을 찾기도 하지만, 새가 어느 장소에 주로 오는지 알고 나면 서울에서도 풍성한 탐조가 가능하다. 서울에는 도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한강과 중랑천 · 탄천 · 안양천 등 여러 지천이 있으며, 도심을 흐르는 청계천이 있다. 둘레길을 따라 서울을 한 바퀴 돌 수 있을 정도로 서울은 산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도심에는 궁궐이 있다. 외곽으로 병풍처럼 둘러친 산과 도심을 잇는 중요한 사이트로 궁궐은 너무나 소중한 그린웨이다. 게다가 서울에는 궁궐이 무려 5개나 된다. 문화 유산인 궁궐은 훼손이나 개발의 광풍을 피해갈 수 있었기에 자연 생태계가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 조선왕조가 후대에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이 궁궐이 아닐까 싶다. 일제강점기에 끊겼던 창경궁과 종묘가 다시 이어지면서 생물 다양성은 더욱 풍부해질 전망이다.

느림의 미학을 온몸으로 느끼는 탐조

새를 보러 창경궁에 갈 때 내 동선은 홍화문을 들어서며 정면에 보이는 명정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영춘헌 옆길을 따라 춘당지를 한 바퀴 돌고 식물원 주변을 둘러본 뒤 태실비, 풍기대를 지나 명정전 뒤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나무 위나 덤불숲 어딘가에 있을 새를 살핀다. 트인 공간에서 작은 새를 눈으로 찾기란 쉽지 않기에 우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새소리가 들리면 발걸음을 멈추고 기다린다. 탐조는 느림의 미학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취미다. 소리의 향방을 눈으로 좇다가 새를 만날 때의 기쁨, 이 기쁨이 탐조를 지속하게 하는 엔진이다. 창경궁에 갈 적마다 만나는 딱따구리 삼총사가 있다.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쇠딱따구리다. 이 따금 아물쇠딱따구리가 합세할 때도 있지만, 늘 그렇진 않다. 숲 바닥에서 씨앗을 찾는 박새, 쇠박새, 진박새, 통통거리다 호로록 날아가는 참새 무리, 나뭇가지를 오가며 꼬리를 까딱이는 딱새, 두 발로 열매를 잡고 부리로 두드리는 소리가 딱따구리조차 기죽게 만드는 작고 앙증맞은 곤줄박이, 그리고 요란하게 ‘찌익’ 내지르고 헤엄치듯 날아가는 직박구리는 창경궁 탐조를 무료하지않게 책임져주는 새들이다.

궁을 한 바퀴 돌고 마지막에 옥천교 옆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이른다. 옥천교 아래로 물이 졸졸 흐를 때면 물까치, 직박구리, 박새, 딱새, 운 좋은 날이면 밀화부리, 되새 등이 와서 목을 축이거나 목욕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한순간도 같은 장면이 없기에 새가 모두 자리를 뜰 때까지 마냥 보게 된다. 다양한 새들을 계절 따라 관찰할 수 있는 창경궁에는 그 밖에도 정말 많은 새가 살고 있고, 계절 따라 오고 가길 반복한다. 창경궁 탐조를 하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길 고양이가 꽤 많다는 사실이다. 길고양이 밥그릇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걸로 보아 보살피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야생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걸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균형이 깨졌을 때가 염려스럽다. 바닥에 내려앉는 작은 새들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는 이유는 전 세계적으로 새가 줄어드는 첫 번째 원인이 고양이이기 때문이다. 4년 넘게 창경궁에서 새를 관찰하는 이들은 한목소리로 해마다 새 숫자가 줄고 있다고 말한다. 일방적인 목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인간의 틈입으로 생태계에 균열이 생긴다면 적어도 개입은 멈춰야 하지 않을까?

새와 어우러져 사는 환경의 중요성

전 세계에 사는 새들이 1년에 먹어 치우는 곤충의 무게가 인류가 소비하는 육류의 무게와 비슷하다는 연구가 있다. 새가 새끼를 기르는 시기와 애벌레 발생이 가장 많은 시기가 절묘하게 겹친다. 부지런히 곤충을 물어와 새끼를 기르는 동안 생태계는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니까 새는 살아 있는 살충제인 셈이다. 새가 줄어들었을 때 상대적으로 늘어나는 곤충의 수를 살충제로 감당할 수 있을까? 지구에 깃들어 사는 모든 존재는 어우러져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새는 삶으로 보여주고 있다. 새소리는 사람들 마음에 안정감을 주어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가끔 새똥 때문에 새를 쫓아버리는 이들이 있는데, 그 정도도 감내하지 않는다 면 우리는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닐까? 탐조의 경우 새가 살아 가는 환경을 제외한 채 새‘만’ 볼 수 없다. 결국 새를 본다는 것은 새뿐만 아니라 새를 포함한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탐조는 눈과 귀와 마음으로 생명을 만나는 작업이다.


최원형
생태·에너지·기후변화와 관련해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시민 교육에 힘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사계절기억책>,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 등이 있다.

출처 서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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