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울시가 우리나라의 수도가 된 지 600년이 넘었습니다. 서울시는 세계 어느 도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세계적인 도시이자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수도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오래된 고궁과 같은 문화유산도 많이 있습니다. 이 중에 하나가 한양 도성입니다. 요즘을 둘레길이라고 하는데, 다른 나라의 침입을 막을 뿐만 아니라 내부관리도 할 수 있는 이 도성도 한양을 수도로 정했던 조선이 남긴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오늘 2025년 3월 22일 토요일은 우리나라 한양 도성에 대한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제가 찾아 가 봤습니다.
<옛 서울시장 공관이자 혜화 한양도성 안내센터 입구입니다.>
<서울시 미래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옛 서울시장 공관, 한양도성 안내센터가 되다!
이곳은 바로 옛 서울 시장 공관입니다. 서울시장 공관이라고 하는 곳은 그 이름 그대로 서울 시장이 되면 공적으로 거주하시던 곳입니다. 이곳은 혜화동에 위치해 있고 지금은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센터>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개방 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그냥 방문할 수 있지만 저희는 <서울시 공공예약>을 통해 사전에 예약을 하고 도슨트를 할 수 있었습니다. 도슨트는 하루 3번할 수 있는데 저희는 10시부터 약 40분 하는 도슨트를 신청했습니다. 10시에 도착하고 저희 말고도 한 팀이 더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한양 도성의 지도를 보여주시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1층 입니다.>
한양 도성의 건축으로 알아보는 도성의 역사!
조선이 건립되고, 다시 한양에 도읍을 정하기 위하여 알아보았고, 현재 경복궁과 종묘사직의 위치가 정해지고,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가장 믿을만한 신하인 정도전이 이 성곽에 대해 설계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도전은 당시 한양을 둘러보고 600척씩 97개 구간을 나눠서 외곽에 성벽을 쌓게 하였고, 197,400명을 동원해서 18km의 성벽을 98일만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때 동원된 곳은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등에서 동원되었고 가까운 경기, 충청, 황해도는 동원을 안 했는데 그 이유는 도성 만들기 전에 경복궁과 종묘 사직을 건설 때 이미 가까운 이곳이 백성이 동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도성이라 함은 돌로 생각하가 쉬운데 태조 때는 흙으로 쌓은 게 더 많았다고 하고 자연석 그대로 쌓았다고 합니다. 이때 쌓은 성벽은 남산 쪽에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천자문의 글자를 따서 구간을 정했는데 첫 구간은 하늘 천 구간이고 이 구간 공사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종대왕 때인 1422년 전 구간을 보수 공사하면서 아래 구간에는 큰 돌을 쓰고 모서리가 둥근 돌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현재 한양 도성의 52%가 세종대왕 때 축조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도성에는 약간 슬픈 이야기도 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으로 손상을 입었지만 병자호란 때 우리나라가 져서 성벽 수리를 못 했다고 하고 1704년 숙종 임금님 때 다시 수리하고 이때는 네모돌로 되었다고 하고 순조 때는 더 큰 돌로 되었다고 합니다. 이 한양 도성은 2016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하려고 하는데 내부 검토 시 탁월한 보편적 가치 부분에 문제가 생겨서 한번 탈락하면 영원히 다시 할 수 없어서 지금은 <탕춘대성>을 기본으로 하여 다시 세계 문화 유산 등재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양 도성에 대한 역사와 의미를 듣고 있습니다.>
<이 한장에 지도에 한양 도성의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공사마다 공사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도성의 위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교의 철학을 따서 만든 4대문의 이름!
다음으로는 서울의 4대문과 4소문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동대문인 흥인지문, 서대문은 돈의문, 남대문은 숭례문, 북대문은 원래 숙청문인데 숙정문으로 부르고 있고, 이 문들의 이름을 보면 인, 의, 예, 지의 글자를 담아서 유교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보면 동대문인 흥인지문만 <지>가 들어가 있는 특징이 있고, 웅성이 있고 튀어나온 성벽이 있는데 이곳은 평지에 있기 때문에 적을 방어하려는 의도라고 합니다. 대문사이에는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 창의문이 있습니다. 돈의문은 풍수지리에 따라 서전문으로 했다가 세종대왕 때 다시 돈의문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때 <새문>으로 불렀고 그래서 <새문안>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숭례문 아래에는 세곡선이 많이 왔는데 이때 남은 물건을 교환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숭례문에는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북문인 숙정문은 항상 닫아두는데 가뭄이 들었을 때는 축축한 기운을 받기 위해 이곳을 열고 양기인 숭례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모니터를 보면서 4대문과 4소문에 대해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아픈 역사의 혜화문을 비롯 다양한 역사를 가진 4소문
이곳 근처에는 혜화문이 있는데 이 혜화문의 원래 이름은 홍화문입니다. 그런데 창경궁 정문의 이름을 홍화문으로 지으면서 이름을 잃어 버렸다가 1511년 중종 임금님 때 혜화문이 됩니다. 다만 이 혜화문은 일제 강점기 때 전차가 오면서 완전히 없어졌다가 1994년 서울정도 600년 기념 복원공사를 통해 복원을 했는데 지금은 보면 높은 곳에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는 이 문은 아래 있었고 일제가 지형을 바꾸어서 원래 지형에 있지 못 해 현재의 높은 곳에 복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광희문은 보통 민가에서 장례 행열이 나가는데 그래서 이곳은 신당이라고 무당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서소문은 천주교 박해와 관련 있는 장소고, 창희문은 인조 반정이 지나간 길이라서 영조 임금님 때 복원을 하면서 인조 반정의 이름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이 창희문은 산속에 있어서 여러 전쟁에도 그대로 있어서 이 창희문을 통해 나머지 문들도 복원을 했다고 합니다.
<혜화문은 일제강점기 때 완전히 사라졌다가 1994년 서울 600주년 기념때 복원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지형 바꿔놔서 처음과 다르게 높은 곳으로 옮겨진 혜화문입니다.>
<숙종 임금님 때 만들어진 진짜 성벽입니다.>
<성벽의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2층은 옛 서울시장 공관에 대해서 알아 봤습니다.
이렇게 1층 해설이 끝나고 2층으로 갔습니다. 2층은 바로 이곳 옛 서울시 공간의 역사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이곳에서는 미세먼지로 흐리지만 남산이 보일 정도로 좋은 위치입니다. 1941년에 일본인 다나카사부로라는 사람이 지었다고 합니다. 지을 때 서양식 뾰족 지붕으로 지었고 입식 부엌과 다다미 방으로 지었는데 짓는 사람들이 조선 사람들이고 조선의 기술로 조선의 목재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이 건축물은 조선, 서양, 일본식이 모두 포함된 특이한 구조의 건물이고 지금은 서울 미래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으로 소유가 몇 번 변경되는데 1959년 대법원에서 구매하였고, 1981년부터 서울 시장님이 공관으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서울 시장님은 오세훈 시장님이신데 오세훈 시장님도 이곳에 계셨다고 합니다. 공관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유네스코 등재 추진 때문이고 철거와 사용 용도로 많은 토론이 있었고 지금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이렇게 2층은 옛 서울시장님의 공관의 역사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모슨 해설을 끝이 났습니다.
<2층은 서울시장 공관에 대해 설명합니다.>
<공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 시장님이신 오세훈 시장님도 이곳에 계셨습니다.>
<이곳에 계셨던 시장님들이 남기신 물건들입니다.>
한양도성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응원합니다.!
오늘은 옛 서울 시장 공관에서 한양 도성의 의미를 다시 알아보고 옛 서울 시장 공관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역사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주는 아니만 가끔 성격을 지날 때 별 생각이 없이 지나갔지만 이제 한양 성벽에 대해서 자세히 배운 것만큼 더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특히 다시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를 준비하고 있는데, 잘 준비해서 꼭 등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래된 우리 나라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세계에서 이렇게 도심에 성벽이 잘 보존된 나라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꼭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옛 서울시장 공관이자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 안내센터에서 미키마우스301기자가 전해드렸습니다.
<혜화문은 근처에 있고 또 배웠으니 찾아 갔습니다.>
<봉황이 있습니다.>
*모든 사진은 직접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