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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을 해외에 알린 언론인, 테일러 가문의 한국에 남아있는 흔적, 딜쿠샤로!

paulkim 2025-02-18 707 공유하기 11

여러분들은 3.1운동이 미국과 같은 해외에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3.1 운동이 한 외국인 언론인 덕분에 미국까지 알려질 수 있었다는 것도 알고 계셨나요? 바로 앨버트 W. 테일러와 그의 가족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기쁜 마음이라는 뜻의 페르시아어 딜쿠샤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우리나라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그들의 집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요?

딜쿠샤로 가는 길

딜쿠샤는 테일러 부부가 일제 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 당했으나, 동생 윌리엄 테일러가 대신 관리했다고 합니다. 허나, 광복 후 자유당 조경규 의원이 딜쿠샤를 매입했으나, 국가 소유가 되어 버리고 말고, 딜쿠샤는 방치되게 됩니다. 그러다 2005, 앨버트의 아들인 브루스의 의뢰로 딜쿠샤를 찾아내고 2021년에 복원 공사가 완료되게 됩니다. 그리고 딜쿠샤는 테일러 부부와 딜쿠샤의 역사의 흔적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개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눈이 내리는 날, 딜쿠샤에 방문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따뜻하고 사랑이 가득찬 느낌이었습니다.

딜쿠샤 거실 사진

위 식탁보는 1900년대에 생산된 식탁보를 직접 가져와 놓은 것입니다.

괘종시계 사진

이 괘종시계도 1900년대에 생산된 괘종시계를 영국에서 수입한 것입니다. 이것도 처음 왔을 때는 망가져 있었는데, 복원하여 작동도 현재 시각으로 잘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면 5분이 늦어져서 매일 아침 시계를 맞추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해설사님이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앨버트와 메리 사진

먼저 오늘의 주인공인 앨버트 테일러와 메리 테일러에 대해 알아볼까요? 우선 앨버트는 조선이 열강의 이권 침탈 당시에 조선 안으로 왔습니다. 이 당시 미국은 조선의 금광 채굴권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이때 묻혀 있던 금은 셀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했다고 합니다. 이때 광산 사업가이신 앨버트의 아버지가 조선으로 오면서 앨버트도 따라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리 테일러는 영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연극배우로 활동을 하다, 인도에서 앨버트를 만나게 되어 호박 목걸이로 인연을 맺어 1917년 인도에서 결혼했습니다.

호박 목걸이

 

이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던 호박 목걸이입니다.

신혼여행을 겸하여 3개월에 걸친 여행 끝에 조선으로 들어와 작은 회색집이라는 서대문의 한옥에서 신혼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후 매리는 딜쿠샤 옆의 은행나무를 보게 되고 앨버트에게 이 은행나무를 계속 보고 싶다고 말하게 되고 그 옆에 딜쿠샤가 지어졌습니다.

 테일러가 딜쿠샤에 살면서 어떤 사업을 했는지 궁금하시죠? 테일러 가족은 골동품점과 상회를 운영하여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상회와 골동품점 사진

이 그림들은 매리가 직접 그린 그림들입니다. 매리의 그림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도장 모양은 매리가 우리나라 그림과 서예 작품에 있는 낙관을 보고 따라서 자신만의 도장 모양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합니다.

매리가 그린 그림 사진들


제가 아까 전에 앨버트가 3.1운동을 세계에 알렸다고 했지요? 그 이유는 매리가 브루스를 낳을 때 세브란스 병원에 있던 간호사가 매리의 침대 아래에 무언가를 넣었다고 합니다. 그걸 보았는데 바로 3.1 독립선언서였다고 합니다. 그 증거가 앨버트에 편지에 독립선언서를 발견했다는 내용과 세브란스 병원에 독립선언서를 몰래 인쇄해서 외국인 환자실에 넣어놓았다는 기록이 있었기 때문에 이 기록이 사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일제 강점기에 이러한 이유로 테일러 가족은 강제 추방당하게 됩니다. 기록상으로는 매리는 먹다 남은 상한 치즈에 다이아를 깊숙이 박아 넣는 식으로 추방당하면서도 약간의 기중품을 챙겨서 미국으로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테일러는 추방당한 이후에도 자신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특수부대에게 미국 통역사로도 지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원은 실패했고, 엘버트는 한국에 다시 발을 딛지 못하고 결국 1948년에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메리는 호박 목걸이(chain of amber)라는 회고록을 작성하며 딜쿠샤를 잊으려고 하지 않았고, 아들인 브루스도 은행나무 옆 딜쿠샤라는 이름의 책을 출판했다고 합니다.

호박 목걸이 책 사진

그리고 전에 자유당 조경규 의원이 딜쿠샤를 매입했으나, 국가 소유가 되었다고 했지요? 그 뒤로 무단으로 들어온 집 없는 사람들이 무단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2006년에 메리의 아들인 브루스가 생전 마지막으로 딜쿠샤를 방문하게 되었고, 브루스가 사망하자, 딸 제니퍼는 딜쿠샤에 브루스의 재를 뿌렸다고 합니다. 그 뒤로 서울시는 2018년에 집 없는 사람들이 다 나가자, 복원 공사를 시작했고, 2021년에 공사를 완료해서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이제 2층 거실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2층 거실 사진

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휴식을 할 때 사용했던 방입니다. 가운데에는 주칠원반을 직접 제작하여 복원했다고 합니다. 벽난로 위에는 테일러 부부가 모은 고려청자가 놓여 있었고, 그 사이에 말 모형이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임금이 쓸 것 같은 병풍도 눈길을 끕니다. 동양과 서양의 물건들이 함께 사용되고 있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멋졌습니다.

병풍 사진

그리고 마지막 방에는 사계절 딜쿠샤를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저도 친구와 함께 딜쿠샤에서 인상 깊었던 괘종시계를 그려서 나무에 걸어두고 나왔습니다.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진

우리 작품


3.1 운동은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노력으로 이룰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독립을 원했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받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숨은 모든 영웅들이 있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기쁜 마음이 넘치는 딜쿠샤에 방문해 보세요!




딜쿠샤

1. 주소 : 서울 종로구 사직로2길 17

2. 관람시간 : 화~일 19:00~18:00(입장마감 17:30)

3. 휴관일 : 1월 1일,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개관)

?4. 관람요금 : 무료

5. 딜쿠샤 해설 예약 :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홈페이지에서





김도윤 기자(윤중초 6)

사진 출처: 직접 촬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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