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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에 있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을 소개 합니다.

sky 2021-05-09 421 공유하기 0

안녕하세요 지난 주말에 다녀온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을 소개하겠습니다. 



한양도성 유적 박물관은 "서울특별시 교축청 교육연구 정보원" 근처,  옛 남산 분수대 자리 앞에 있습니다.


넓은 공터에 지붕이 있어서 처음에 전시관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요. 
2013~2014년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성벽 유적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한양도성은 조선의 도읍지인 한양
(서울의 옛 명칭) 방어하기 위해 태조 이성계가 쌓았습니다태조 이성계는 한양을 둘러싼 4개의 산인 백악산,인왕산,낙산(타락산) 그리고 남산 사이에 평지를 연결 하여 한양도성을 쌓았습니다. 원래 한양도성의 전체 길이는 18.6Km로 예상 되지만, 지금은 도시화 과정에서 훼손이 되어 약13Km 정도 남아 있습니다. 



   전시관 입구의  관람 라 들어가다보면은 작은 구멍 같이 보이는 것이 있는데요. 이 구멍을 보다 보면은 용도가 궁금해집니다. 과연 이 구멍에 쓰임새는 무엇 이었을까요? 활이나 대포를 쓰는 곳이었을까요? 아니면 무언가를 버리는 용도였을 수도 있고, 쓰임새가 딱히 없었을 수도 있겠네요.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몰라도 매우 궁금한 구멍이네요.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에 있는 성벽에 있는 일부분으로는 각 시기별 축적 양식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태조 때는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성돌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세종 때는 돌을 납작하고, 둥근 모양으로 다듬어 사용하였으나, 숙종 때부터 돌을 규격화 하여 성돌로 사용하였습니다.


한양도성은 뒤채움 구조로 만들어 졌습니다. 뒤채움 구조란 경사를 이용하여 한쪽에만 돌을 쌓아 올리고, 나머지 반쪽과 틈은 작은 돌과 흙으로 채워 넣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주로 지대석, 면석, 여장 그리고 뒷부분은 뒷채움석과 흙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성벽이 많이 훼손이 되어 높이가 높지 않지만 전에는 약6m이었을 것이라고 추정 중 입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성벽은 1단인 지대석과 3단인 면석 뿐 입니다.



관람로를 쭈욱 따라 올라가면 "각자 성석"이라는 글자를 새긴 성돌이 있습니다.  이 돌에 새겨진 글자를 통해 시기별로 축성 구간의 명칭(14세기)과, 축성 담당 지방(15세기), 공사관계자의 이름(17세기 이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한양 도성은 서울을 둘러 싸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도성이 1396년에 만들어 졌다니 대단한 것 같습니다. 저는 특히 저 무거운 돌 덩어리들을 어디서 구했을까 싶네요. 



 거중기가 만들어지기 전에 돌 하나를 옮기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필요 했을 것 같은데, 그림으로 설명도 잘 되어 있었습니다.


 

 

한양도성의일부분이 있는 이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은 서울 회현동에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서울특별시 교육청 교육연구 정보원'과 남산 도서관 근처에 있으니 시간 날 때 한번 들려 보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보면 신기해요.^^



* 사진:  본인촬영

* 설명:  한양도성 유적 전시관 안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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