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에 있는 글씨>
안녕하세요, 여러분. rabbitish(윤이나) 기자입니다.
오늘은 한국영상자료원에 자리해 있는 한국영화박물관에 탐방 취재하러 다녀왔는데요.
우리의 역사에는 어떤 영화가 있는지 알아보러 들어가 볼까요? 출발!
먼저, 영화의 생일, 그러니까 영화가 처음으로 시작된 날을 알아봤습니다.
영화가 시작된 날, 즉 영화의 생일은 정확히 1895년 12월 28일인데요.
영화가 처음으로 시작된 날에는 한 사람도 있겠지요?
이 사람이 바로 뤼미아르 형제입니다.
이 두 사람은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최초의 영상 상영 기계를 이용하여
한 카페에서 영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1달러를 받은 일이 최초의 영화 상영이라고 합니다.

<설명>
바로 옆에는 우리나라의 영화(버튼 홉스라는 외국인이 세계 일주하다가 찍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습니다.

<한국 최초의 영화>
이제 드디어 1950년대로 들어갑니다.
1950년대에 나오는 제일 첫 부분은 바로 영화와 관련된 물건들이었습니다.
첫 번째 물건은 카메라입니다.
이 카메라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데요,
이 카메라에서 영상이 나오려면 사람이 직접 수동으로 손잡이를 돌려야 하는데,
그래서 돌리는 빠르기가 일정치 않아 갑자기 영화가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얼렁뚱땅하게
영화가 상영되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물건은 타자기입니다.
이 타자기는 옛날에, 무성 영화(소리가 없음)가 있을 때 영화에 때때로 자막을 넣었는데,
그때 이 타자기를 이용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물건은 필름 통입니다.
왜 필름 통이 있을까요? 왜냐하면 필름은 영화가 유행이 지나고 쓸모없어지면
더 이상 필름을 모아둘 필요가 없어서 불이 확 붙도록 만들었는데,
이 필름들이 한꺼번에 창고 같은 데에서 불탄다면 물건과 사람 모두 위험해지겠죠?
그래서 안전하게 필름 통에 보관해 넣는 거 랍니다.

다음은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의 내용이 있었습니다.
도슨트 선생님이 왜 영화 제목이 아리랑인지 말씀해 주셨는데,
왜냐하면 마지막에 주인공이 법을 어겨서 잡혀갈 때 ‘아리랑’ 민요 노래가 나왔고,
주인공이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도 아리랑고개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또 이 영화는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유가,
1950년대 후반이면 15년 정도 광복이 지났으니까,
아직도 사람들이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잘 알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영화에서 애원하는 감정을 느꼈기에,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보고 공감하고 좋아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어, 이게 왜 나오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물건들이 있었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전쟁에 사용되는 철모, 총 같은 물건들이 있었으니까요.
왜 있었을까요? 왜냐하면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영화 감독들은 자신의 끼를
마음껏 세상으로 내보낼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전쟁터의 군인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기록하고, 찍으며 전쟁 영화를 만든 거죠.
그리고 기록할 때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 철모를 쓰면 따라다녔으니 철모와 군모 등을 이용해야 했고요.

이 군모와 철모가 있는 모퉁이를 지나면 <자유 부인>(한형모, 1956년)이라는 영화가
짧게 상영되고 있었는데요,
이 영화는 1956년대에 많은 사람이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했던 영화인데요.
왜냐하면 이 영화의 주제는 유교, 한국 같은 뻔한 영화가 아닌 서양의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영상을 보시면 무도회에서 많은 사람이 춤을 추고 있는데,
이 무도회에서는 서양 옷, 서양 춤, 서양 악기가 나오고 있어요.

이 <자유 부인> 영화의 옆에는 미니어처와 함께
서울의 외래식, 한국식 영화관과 대한민국의 영화 사랑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영화 사랑은 점점 올라가서 1년 평균 영화관에 가는 횟수가
1960에서 70년대에는 2에서 3 정도 되었는데, 현재는 무려 6에 가까운 수입니다.
그만큼 한국의 영화 사랑은 지금도 높아진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화 사랑은 급격히 하락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이제 영화에 지친 사람들이 스포츠, 여행, 오락 등 다양한 문화 영역이 탄생하면서 사람들은 점차 영화와 멀어지게 됩니다.
둘째, 1960년대부터 군사정권이 시작되면서 영화를 만들 때는 검열을 받아야 했는데, 검열도 너무한데, 거기에다가 두 번이나 하니 정말 잘 되고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어 영화가 재미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1980년대로 들어섭니다.
1980년대에는 어른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영화인
<철수와 만수> 같은 영화의 포스터가 여러 장 있었는데요.
이 시대부터는 어른들만 볼 수 있는 만 19세 이상 영화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와 동시에 돈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독립영화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다음 코너로 가면 이번에는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우리도 정말 잘 알고 있는 영화,
<명량>, <기생충>, <태극기 휘날리면> 등의 여러 가지 영화가 있었는데요,
이 영화의 포스터 밑에는 영화의 주연들이 입었던 옷들도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시대가 1990년대였는데,
영화의 탄생이 100주년이 되어 다른 나라들에서는 영화제나 축제를 많이 했는데,
우리나라는 그때 영화제가 없어 지금의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제 마지막에 가까워졌습니다.
이 큰 공간에서는 한국인이 투표한 100편의 영화 제목과 그 영화의 짧은 영상이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역대 한국 사람들이 받은 영화제의 상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입니다.
긴 여정이 끝나고 나서 저는 재미있는 체험 명화 색칠하기와 그리기를 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도 줄을 길게 서 체험하고 전시관 체험은 끝이 났습니다.
어때요, 여러분. 재미있으셨나요? 이제 이만 기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어린이 기자 RABBITISH(윤이나)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